[시론] 전국민 고용보험, 선심성 복지여선 안 된다

취약계층 복지예산 통폐합하고
근로자 특성 맞는 실업부조 도입
노동 시장·정책부터 뜯어고쳐야

김태기 <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
런던의 빈민가에 가 보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연구실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던 영국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의 충고대로 전 국민 고용보험제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가 필요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기존 고용보험제도의 한계가 분명해졌다. 취약계층일수록 대량실업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하는데도 고용보험제도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취약계층이 고용보험에 가입하도록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지만 전체 근로자의 50% 정도만 혜택을 보기 때문이다. 전체 근로자의 3분의 1 이상인 비정규직은 가입 비율이 40%대로 뚝 떨어진다. 자영업, 특수고용, 프리랜서 등 임금이 아니라 자기 사업으로 소득을 버는 사업 근로자는 가입률이 제로(0)에 가깝다.

고용보험제도는 1990년대 초반 고성장·저실업 시대에 만들어졌다. 고용 형태가 단순했고 비정규직이 없었으며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도 크지 않았던 시기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은 바뀌어 고임금과 고용 보호의 혜택을 누리는 소수의 ‘인사이드’와 그렇지 못한 다수의 ‘아웃사이드’ 근로자로 나뉘어 버렸다. 그러나 고용보험제도는 노동시장 변화에 맞춰 개편되지 못해 형편이 좋은 절반의 근로자만을 위한 제도가 됐다. 고용보험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취약계층의 고용 촉진을 위해 각종 재정지원 사업을 벌였으나 실효성이 낮아 예산만 낭비했다. 노동시장 법·제도가 강성 노조가 있는 기업의 일부 근로자만 보호해 취약계층일수록 실업의 위험이 커지는 모순은 사라지지 않았다.실업은 사람의 행복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그러나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취약계층의 실업을 해결할 수는 없다. 고용보험제도에 사회보험의 원리를 강화하고, 특히 노동정책을 적극적으로 바꿔야 한다. 저성장·고실업, 고용 형태의 다양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전제하고 고용보험을 선진국처럼 실업보험으로 전환해야 한다. 실업급여에다 직업훈련 등 직업능력 개발과 구직활동 지원 등 고용안정서비스를 한데 묶은 기존 고용보험제로는 취약계층의 실업을 예방하고 지속 기간을 줄이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어렵다. 취약계층만 늘리는 고용보호법을 완화해 취약계층의 실업을 줄이지 못하면 고용보험제도 자체를 지탱할 수 없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를 도입하려면 자영업과 특수고용 등 사업 근로자의 특성에 맞게 실업보험과 별도로 실업부조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노사가 분담하는 실업보험과 달리 실업부조는 사업 근로자와 정부가 분담하되 소득에 따라 비율을 달리해야 한다. 소득 파악도 제대로 안 되는 사업 근로자를 기존의 고용보험제도로 지원하면 임금 근로자의 부담이 급증하고 형평성은 무너진다. 이미 고용보험기금 수지가 2018년부터 적자로 바뀌었는데 그 폭이 커져 2019년에 2조원을 넘었고, 잔액은 지난 3년 새 30%나 줄었다. 실업부조에 투입할 정부 재원은 취약계층을 위한 각종 복지 및 일자리 예산을 통폐합해 조성하고 사업 근로자의 소득 파악은 국세청이 맡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에 위력을 발휘한 국민건강보험제도처럼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 도입은 뜨거운 가슴으로, 시행은 차가운 머리로 임해야 한다. 건강보험과 달리 고용보험은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사람이 가입 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 국민이라는 말에 방점을 두면 안 된다. 그래도 고용보험을 확대하기 때문에 국민의 세금 부담은 늘 수밖에 없다. 실업보험과 실업부조 모두 실업을 줄이고 실업에서 빨리 벗어나도록 만들어야 하기에 선심성 복지가 돼서는 안 되고 노동법과 노동정책의 개혁을 수반해야 한다. 특수고용 중에서 예술인부터 고용보험에 가입하는 정책은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이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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