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민간에만 직무급제 도입 종용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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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탓하며 공직사회는 놔두고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공직사회 직무급제 도입이 과제”라며 “4~6급 공무원에 대해 정착되도록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공직사회 직무급제 도입 필요성을 묻는 말에 대한 답변이었지만 홍 부총리가 직접 공무원 직무급제 도입 방침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매년 매뉴얼 내놓고 기업만 들볶아
백승현 경제부 기자 argos@hankyung.com
일각에서는 경제정책 수장이 직무급제 도입을 시사한 만큼 시행이 본격화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간 정부의 행보를 보면 정부가 정말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 ‘물음표’가 붙는다.정부는 지금껏 공무원노조와 임금체계 개편을 놓고 제대로 테이블에 마주 앉은 적이 없다. 개편 얘기가 나올 때마다 노조는 번번이 반발했고 정부도 이를 이유로 사실상 손을 놨다. 홍 부총리의 발언 다음날에도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직무급제 도입 반대를 분명히 한다”며 “노조와 어떤 논의도 거치지 않고 직무급제 도입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불온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앞서 지난달에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내 금융산업위원회가 ‘금융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무려 15개월간 논의했으나 합의문은커녕 공익위원 권고안도 내지 못하고 빈손으로 종료했다. 근로시간 단축, 과도한 성과문화 개선, 산별교섭 효율화 등 대부분 의제에 노사가 뜻을 모았지만 임금체계 개편에 노동계가 끝까지 반대했기 때문이다.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서는 ‘임’자도 못 꺼내게 했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지난해 인사혁신처가 ‘공무원 보수체계 발전 방안’에 관한 연구용역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관련 사실이 알려지면서 노조가 강력 반발하자 인사처는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번 부총리 발언과 관련해서도 인사처는 “별다른 진행 상황은 없다”고 했다.
정부는 2017년 ‘정년 60세’를 전면 시행한 지 3년도 채 안돼 ‘고용연장’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정년 추가 연장 필요성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2013년 임금체계 개편을 강제하지 않은 채 정년 60세법을 졸속 입법했다가 되레 퇴직연령이 낮아지는 등 부작용이 아직도 속출하고 있다. 고용 연장에 반드시 임금체계 개편이 동반돼야 하는 이유다. 그러기 위해선 공공부문이 앞장서야 한다. 공공부문은 육아휴직 확대, 여성 고용 확대 등 각종 ‘단물’ 복지정책을 새로 시행할 때 마중물 역할을 한다며 선제적으로 도입해 혜택을 받아왔다. 반면 임금체계 개편같이 고통이 따르는 일은 정부는 하지 않으면서 매년 ‘매뉴얼’을 발표하며 민간기업을 종용하고 있다. 부총리의 공언이 빈말이 되지 않으려면 ‘단물’ 아닌 ‘쓴 약’도 공공부문이 먼저 삼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