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훈 회장 "실력있는 낚시꾼은 낚싯대 한 개로 승부…새로운 영역 개척하는 사업은 예술이다"

어록으로 본 경영철학
< 베트남전 때 美 군수품 베트남 운송 >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왼쪽)가 1969년 신상철 주베트남대사와 함께 베트남 퀴논항 하역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낚싯대를 여러 개 걸쳐 놓는다고 해서 고기가 다 물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력 있는 낚시꾼은 단 하나의 낚싯대로 승부를 건다.”

한진그룹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의 ‘낚싯대 경영’을 보여주는 지론이다. 어느 사업이 뜬다고 해서 몰려가 여기저기 ‘낚싯대’를 걸쳐놓는 것보다 선도적인 분야에서 꾸준히 한 길을 파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다. 그는 “남들이 성공하니까 욕심을 내서 무모하게 쫓아다니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런 지론대로 조 창업주는 1세대 경영인으로는 드물게 수송 외길을 고집했다. 사업 확장도 물류·수송에 집중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 창업주는 한국의 수송 거목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 대한항공 인수식 > 1969년 3월 김포공항에서 열린 대한항공공사 인수식.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는 적자 27억원 규모의 국영기업이었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본격적인 민항시대를 열었다.
조 창업주의 어록을 들여다보면 그의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생전 “신용이 나의 사업 밑천”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사업에서 신뢰를 중요하게 여겼다. 조 창업주는 “신용은 평소에 쌓는 것”이라며 “사업 초창기부터 신용과 자금관리를 기업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차근차근 신뢰를 쌓다 보면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 조 창업주는 이때 결단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무리 좋은 기회라 하더라도 이를 포착하고 실천에 옮기는 결단이 없으면 발전은 없다”고 말했다. 조 창업주가 베트남전 때 미군과 한국군 보급물자 수송권을 따낸 배경이다.
< 미국 롱비치 한진해운 터미널 준공 >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1991년 3월 미국 롱비치 한진해운 터미널 준공을 기념해 현장을 방문했다. 대한항공 제공
미군에 신뢰를 쌓은 덕에 베트남전에서 미군과 한국군의 보급물자 수송사업을 딸 기회를 잡았지만 위험도 뒤따랐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장비를 갖춰야 했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엄청난 손해를 봐야 하는 조건도 붙었다. 조 창업주는 회사 간부를 비롯한 주위의 만류에도 사업 수주를 밀어붙여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그는 “나는 사업에는 타이밍이 있고, 그것은 남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포착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며 “당시 한진이 도약하기 위해서는 베트남 진출이 필수라고 판단했다”고 회고했다.

조 창업주는 사업을 예술에 빗대기도 했다. 그는 “올바른 사업은 남이 개척한 분야에 뒤늦게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창의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라며 “이런 의미에서 사업은 예술과 맥이 통한다”고 말했다. 예술가의 독창적인 철학이 담긴 작품은 세월이 지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것처럼 경영자의 독창적 철학을 바탕으로 발전한 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연안 수송선 ‘한부호’ 진수식 > 1990년 1월 5일 국내 연안 수송을 위해 건조한 ‘한부호’ 진수식에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가 축사를 하고 있다.
조 창업주의 어록에서는 어려움 속에서도 길을 찾아내려는 의지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생전 “행운과 기회는 누가 갖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 “역경에 처해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성장의 기회로 활용해 나아가려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 등 의지와 노력의 중요함을 일깨우는 말을 남겼다. ‘사업에 성공하려면 운이 따라야 한다’는 통설도 “노력 없이 성공을 얻게 되는 의미라면 맞지 않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역사의 주인공들은 남이 만들어준 편안함 속에 안주하며 무사안일하게 평생을 보낸 사람이 아니라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이라는 게 그 이유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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