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업가 정신 가두는 규제환경 바꿔야

성장과 일자리 주역은 기업인데
배임죄처벌 강화 등 규제 일변도
기업가 정신 어떻게 살아나겠나

황인학 < 한양대 특임교수·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2017년 3.2%, 2018년 2.7%, 올해 1.8~2.0%?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경제성장률이 속락하고 있다. 작년에 청와대 정책실장은 올 하반기가 되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효과를 내서 경제가 선순환할 것이라고 낙관했으나 결과는 거꾸로다. 2% 안팎의 성장률은 연초에 정부가 전망하고 목표했던 2.6%보다 크게 낮을 뿐 아니라, 글로벌 금융위기의 먹구름이 세계 경제를 뒤덮었던 2009년(0.8%) 후 가장 저조한 성적이다.

무슨 일이든 성공에는 ‘임자’가 많고 실패에는 ‘핑계’가 많다. 정부는 수출·투자가 부진하고 경제가 악화된 원인을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 세계 경기 하강 등 외부 변수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우리 내부에 있다. 성장과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의 주역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다. 따라서 경기 회복을 바란다면 기업가 정신과 시장 활력을 위축·제약하는 규제와 제도를 개선해야 했다. 현 정부의 정책은 재벌을 적폐로 보는 ‘공정경제’ 프레임하에 거꾸로 갔다. 그것도 경기 하강 국면에서 말이다.‘못 하게 막는 규제가 많을수록 국민은 더욱 가난하게 되고, 법령의 서슬이 시퍼럴수록 범법자는 늘어난다(天下多忌諱 而民彌貧, 法令滋彰 盜賊多有).’ 노자는 도덕경 제57장에서 ‘바름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조금 과장하면 우리의 규제환경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최근에 바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시행령이다. 법무부는 이 법 시행령을 개정해 5억원 이상의 배임·횡령을 저지른 기업인의 취업 제한 범위를 제3자 관련 기업에서 경제범죄로 손해를 입은 기업체로 확대했다. 그 결과 이제부터 배임·횡령죄가 확정된 기업인은 살인죄에 버금가는 형량과 별개로 본인이 창업하고 경영하고 근무하던 회사로 복귀할 수 없게 됐다.

언뜻 보면 이상할 게 없어 보이지만 배임죄 구성 요건이 지극히 모호해 예측하기 어렵고, 너무 포괄적이라 누구나 걸면 걸린다. 매년 4000명 안팎의 기업인이 배임·횡령죄로 기소될 만큼 배임죄는 오·남용의 소지가 많다. 모든 기업인에게 공통적인 공포의 대상이다. 이 때문에 경제계는 다른 나라처럼 우리도 신의·성실에 기초한 도전적 기업가 정신이 실패해도 형벌로 처벌받지 않도록 ‘경영판단원칙’을 도입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배임죄의 모호한 구성요건은 방치한 채 경영복귀 금지 제재만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를 바꿨다.

국민연금이 경영 참여를 추진함에 따라 해당 기업들이 정권 눈치를 봐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9월 6일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에는 단순 투자자에게 허용하지 않던 이사의 직무정지·해임, 배당 요구 등 경영참여 활동을 공적 연기금에 특별히 허용하겠다는 게 개정안의 요지다. 한걸음 더 나아가 국민연금은 지난 13일 공청회에서 횡령·배임·부당지원행위 등 법 위반 사안이 있거나, 기업가치 훼손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경영참여 목적의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기준을 발표했다. 바야흐로 정권의 눈밖에 벗어난 기업(인)은 언제든 연기금을 통한 경영권 위협에 직면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내년 경제는 좀 나아질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성장률을 2.2%로 전망하고 그 이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관건은 방법론이다. 정부는 재정지출을 대폭 늘리겠다고 하지만 성장의 원천은 정부 재정이 아니라 민간 투자다. 재정 확대로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면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이 그토록 길게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도 없었을 것이다.

투자는 기업가 정신의 결과다. 경제를 재도약시키려면 기업가를 겁박하고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규제부터 바로잡는 제도 혁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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