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日외교 무대책이 '파국' 불렀다

日 보복 압박에도 무대응 일관
정부는 발표 직전까지도 '감감'
뒤늦게 주한 日대사 불러 항의
조세영 외교부 1차관에게 1일 초치 당한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운데)가 취재진을 피해 지하주차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이 1일 한국에 대한 반도체 재료의 수출 규제를 공식 발표하자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의 ‘대일(對日) 외교 부재’가 결국 ‘경제 참사’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당일까지 이를 통보받지 못한 것도 사태의 심각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외교부는 이날 “이번 조치가 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기업들과 협력하면서 대응 방안을 마련해 나갈 예정”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해 강한 유감 표명과 함께 철회를 촉구했다.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일본 측이 공공연하게 보복 가능성을 언급해왔음에도 발표 직전까지 정부가 파악하지 못했다는 건 명백한 외교 관리 실패”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의 조치는 대법원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린 지 8개월여 만에 나왔다. 그간 외교 채널을 통해 상황을 관리할 기회가 있었지만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본 정부는 1965년 맺은 청구권 협정에 근거해 분쟁해결 절차 중 첫 단계인 양국 간 ‘외교 협의’를 지난 1월 한국 측에 요청했지만 우리 정부는 ‘침묵’으로 대응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일본으로선 자국 기업의 재산이 매각 절차에 들어간 상황에서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실질적 조치에 나선 것”이라며 “더 강한 수위의 추가 조치도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한국 정부가 일본 측에 ‘한·일 양국 기업의 자발적인 출연금으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고 제안한 게 오히려 화를 불렀다는 분석도 나온다. 진 위원은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풀 진정성이 없다고 확신하게 됐다”며 “이달 말 참의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한국 정부를 더 이상 기다려주면 안 된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일본의 이번 보복 조치가 ‘치킨게임’을 각오하겠다는 ‘초강수’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번 조치로 인해 한국과 거래하는 일본 기업의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자국 기업의 재산권이 침해되는 사례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뾰족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카드도 쉽게 꺼내기 어렵다. 한국에 특별히 불이익을 주는 게 아닌, 기존의 특혜를 거둬들이는 방식이어서 WTO 기준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이 교수는 “일본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대항 조치가 아니다’고 당당히 밝힌 것에서도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이 읽힌다”고 분석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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