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아팠으면 너를 잡았을 건데" 총탄에 아들 잃은 어머니의 恨

5·18 기념식서 고교생 안종필군 사연 소개…참석자들 눈물로 말 잇지 못해
"내가 안 아팠으면 그때 너를 잡았을 건데…."
18일 5·18 국립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는 올해도 소복을 입은 어머니들이 말없이 눈물을 지으며 자리를 지켰다.이 여성들은 5·18 희생자 유족들이다.

이날 기념공연에서는 최후의 항전을 하다 총상을 입고 사망한 고등학생 시민군 고(故) 안종필 군 어머니 이정님 여사의 사연이 소개됐다.

5월 항쟁 당시 옛 전남도청 앞에서 마지막 가두방송을 했던 박영순씨가 무대에 나와 '그날, 5·18'이라는 주제로 참혹했던 광주의 상황을 소개하며 이 여사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 여사는 1980년 5월 광주상고(현 동성고) 1학년이던 아들 안종필(16)군을 잃었다.

안 군은 고교생이었음에도 "심부름이라도 하겠다"며 시내에 나가 시민군 활동을 도왔다.

이 여사는 시위대 차량에 타 "계엄군은 물러가라"고 외치던 아들을 데리고 온 뒤 총탄 소리가 나는 시내에 또 나갈까 봐 노심초사하다가 몸져누웠다.이 여사가 병이 난 다음 날인 1980년 5월 25일 새벽 안 군은 또다시 거리로 나갔고 그것이 마지막이 됐다.

남편을 여의고 홀로 1남 2녀를 키웠던 이 여사는 세상을 떠난 막내아들을 향해 "몸이 아파 배고프다는 아들에게 밥도 차려주지 못했다.

내가 안 아팠으면 너를 (못 가게) 잡았을 건데"라며 매일같이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안종필 군의 조카인 안혜진씨도 무대에 나와 소년 안종필의 비극과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며 아픔을 감내해야 했을 안 군 형의 이야기를 전했다.

혜진씨는 "큰형이었던 아버지는 20대 어린 나이에 아프신 할머니를 대신해 모질고 힘든 상황을 모두 감수해야 했다"며 "막냇동생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 아파 시신조차 보여드리지 못했다.

엄청난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 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혜진씨는 "요즘 할머니는 삼촌의 기억을 잃어가지만 아픔이 남아서인지 눈물이 많아지셨다"면서 "삼촌을 기억하고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분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청년이었던 우리 아버지의 고통과 슬픔을 간직한 할머니를 위로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며 눈물을 참아가며 힘겹게 낭독을 마쳤다.
문재인 대통령부터 사회자까지 안 군 가족 사연을 들은 참석자들은 곳곳에서 눈물을 훔쳤다.

사회자는 공연이 끝난 뒤 떨리는 목소리를 수차례 가다듬은 뒤에야 "광주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 민주주의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라며 다음 순서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 여사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무대에 나섰던 문재인 대통령도 "광주시민들께 너무나 미안하고"라며 기념사를 하다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김정숙 여사는 옆자리에 앉은 다른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눈물을 흘렸다.한편 안 군처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사망한 학생 희생자는 16개 학교, 18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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