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산업 현실에 눈·귀 닫은 탁상정책이 너무 많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의 불똥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배달 기사들에게도 튀었다. 이륜자동차(오토바이)를 이용하는 사람이 배달을 수행하는 중에 다른 배달 요청을 받지 못하도록 한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 때문이다. 이 규칙 개정안이 시행되면 배송 건수에 따라 정해지는 일당(日當)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는 게 배달 기사들의 하소연이다.

고용노동부는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배달 기사들은 “현장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며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비슷한 방향의 주문을 한꺼번에 처리해 효율을 높이는 물류산업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서다. 운행 중 잠시 멈추고 주문을 받거나 손가락이 아닌 목소리로 ‘콜’을 잡을 수 있는데도 추가 주문을 못 받게 하는 것은 행정편의라는 지적도 나온다.산업 현장의 현실에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이런 탁상정책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배달 기사의 반발을 부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은 보완의 여지라도 있지만, 기업 경영을 불확실성과 불안 속으로 몰아넣을 모법(母法)인 산안법과 산안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은 요지부동이다. 기업들은 언제 어떤 기준에 걸려 공장 가동을 얼마나 멈춰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기업 대표자에게 전국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산업재해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게 한 조항도 기업 활동을 옥죄는 대표적인 독소(毒素) 규정이다.

현장 사정을 도외시한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은 제조업 뿌리를 뒤흔들고 있다. 내년부터 화관법 기준에 맞춰 저압(低壓)가스 배관검사를 하려면 일괄공정 체제인 반도체, 석유화학 공장을 1년 가까이 멈춰 세워야 할 판이다. 최저임금 급속 인상 등의 여파로 도산 위기에 처한 도금 등 뿌리산업 기업들은 바뀐 475개 설비기준에 따라 공장을 새로 지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는 산업 현장에서 들려오는 기업들의 비명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애로 사항을 검토해보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제조업 르네상스’를 외치는 정부가 기업인을 범법자로 내몰고 기업을 사지(死地)로 내모는 법령 쏟아내기에 여념이 없으니 이런 이율배반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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