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피해자 정보가 그대로 가해자 측에?…"제도정비 필요"

인권위, 법원행정처장에 규정 정비 권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성폭력 피해자의 신상정보가 가해자 측으로 흘러 들어가는 일이 발생한 사실을 파악하고 신상정보 관리를 다룬 규정을 정비할 것을 법원행정처장에게 권고했다.이런 일이 발생한 지방법원의 법원장에게는 담당자 주의 조치와 직원 직무교육을 할 것을 권고했다.

18일 인권위에 따르면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배우자인 A씨는 2017년 6월 법원의 사건기록 열람·복사 담당자가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적힌 복사본을 가해자 측 변호사에게 교부해 신상이 유출됐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 담당자는 "형사사건 재판기록을 열람·복사할 때 2차 피해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실제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업무 과실로 피해자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심려가 크다"고 밝혔다.인권위 조사 결과, 개인정보 유출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 담당자의 말과 달리 가해자 측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그대로 적힌 사본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가해자 측 변호사는 사본에 적힌 피해자의 주소와 주민등록번호 등을 보고 공탁금 신청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했고, 피해자 측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그대로 기재된 공탁 통지서를 받아봤다.

공탁금이란 소송 당사자가 민사 가압류를 위해 담보로 제공하거나 형사사건 합의를 위해 법원에 맡기는 돈을 말한다.인권위는 "법원 담당자의 부주의로 가해자가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쉽게 알 수 있는 상황에 놓여 피해자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었다"며 "인적사항 노출로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침해됐다"고 판단했다.

다만, 인권위는 이번 일의 책임이 전적으로 법원 담당자 개인에게만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신상정보에 대한 비실명화 조치가 관련 규정에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인권위는 "현재 검찰은 사건 관계인의 명예나 사생활의 비밀, 생명·신체의 안전 등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을 때는 사건기록 열람·복사 신청 교부 범위를 제한하도록 검찰사무 규칙에 규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법원의 재판기록 열람·복사 규칙과 예규에는 이런 경우를 비실명화 조치 사유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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