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공동체의 회복과 육아 나눔] 양성평등에서 양성존중으로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누군가는 배고픔을 달래는 따듯한 밥 한 공기에서 행복을 느끼며, 누군가는 따듯한 말 한마디에서 위로와 행복을 느낀다. 이러한 행복은 인간의 욕구 충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간의 다양한 욕구에 대해 연구한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누구나 다섯 가지의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이 욕구들은 낮은 단계의 기초적인 욕구에서부터 차례대로 충족해 나가려고 하는 특징이 있다고 하였다. 그가 제시한 가장 기초적인 욕구는 생리적인 욕구로 누구나 생존을 위해 먹고, 자고, 휴식을 취하며 종족 번식을 위한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면 안전해지려는 욕구가 생기며,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면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고 어느 한 곳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욕구가 충족되면 다시 누군가에게 존경받고 싶은 명예욕이나 권력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고 존경의 욕구가 충족되면 자기 발전을 이루고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욕구를 만족요인과 불만족을 주는 요인으로 나누어 생각한 학자도 있다. 허즈버그(Herzberg)는 기존에 불만족하는 요인을 제거하면 만족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비판하고 불만족과 만족은 서로 다른 차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이론은 1959년에 회계전문가와 엔지니어 200명에게 직무와 관련하여 만족했던 상황이나 경험, 불만족 했던 상황이나 경험 등을 설명하게 하고 이를 종합하면서 만들어졌다. 그는 연구를 통해 물질적인 조건이나 안정된 직업 등은 불만족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지만 불만족 요인을 제거한다고 해서 만족도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연구결과들은 인간의 행복은 본질적 누군가에게 따듯한 사랑, 위로, 감사, 헌신, 칭찬,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등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물질적인 만족이나 안정된 직업 등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행복감을 주는 것 같지만 그 본질은 그 물질과 안정된 직업을 통해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거나 다른 무엇인가를 해 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거나 물질적인 만족이나 안정된 직업 등이 나의 노력과 봉사에 대한 인정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리들은 경쟁을 통해 누군가 보다 앞서야 인생에서 성공한 것이고 안정된 직장을 통해 돈을 많이 벌면 인생에서 승자이고 그 반대의 경우 패배자라는 패러다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낮선 원리일 수 있다. ‘사랑’, ‘위로’, ‘감사’, ‘헌신’, ‘칭찬’, ‘자신과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등은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려놓음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돈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가족공동체에서도 이러한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가족의 탄생은 ‘사랑’과 ‘존중’에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 주어도 아깝지 않고 나 자신을 한 없이 내려놓아도 내 자신이 부족함이 많았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상대방을 존중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결혼을 결심하고 가정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부부의 사랑을 통해 아이가 생겨나게 되고, 아이는 엄마의 뱃속에서 탯줄 하나에 의지하여 엄마의 보호를 받으며 자랐으며, 세상에 나와서는 부모님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받으며 자라간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사랑’과 부모에 대한 존경심 즉 ‘존중’의 가치를 배워 나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가족 관계는 왜곡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침 불륜 드라마를 통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바람둥이라는 세뇌를 당하며 내 남편도 그럴 수 있다. 내 아내도 그럴 수 있다는 막연한 심리적 강요를 받는다. 저녁에는 막장 드라마를 통해 ‘모든 가정은 파괴될 것이다.’라는 심리적 강요도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족 구성원들은 가족공동체의 항상성을 위해 노력한다. 많은 남편과 아내들은 가정을 위해 늦은 밤까지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이러한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일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참된 가치와 행복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가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 일부에서는 아내가 이만큼 일을 하니까 남편이 이만큼 일을 하니까 당신도 이만큼 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사람도 있다. 결혼 전에 ‘나는 이만큼 할 테니 당신은 이만큼 해야 한다’고 서로 약속하며 양성 평등을 강조하여 결혼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마치 초등학생들이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것처럼 이해관계를 우선시 한다. 하지만 양성평등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좀 더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양성평등은 조건이나 기회를 평등하게 갖자는 것에 있지 않다. 서로 ‘존중’하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가정의 행복은 서로 평등하게 살아가는데 있지 않다. 서로 존중함에 있다. 남편이 아내를 존중하고, 아내가 남편을 존중하고, 자녀가 부모를 존중하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할 때 가족의 행복이 시작되는 것이다.



글= 정영모 한양대학교 교육복지정책중점연구소 연구교수

정리= 경규민 한경닷컴 기자 gyu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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