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또 '예산 시한' 어긴 국회…책임 물어야 할 '집단 배임' 아닌가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해 온 국회가 올해도 처리 시한(12월2일)을 넘겼다. 단순히 시한을 넘긴 정도가 아니라 ‘졸속’에 관한 온갖 ‘신기록’까지 세웠다. 470조원이 넘는 초거대 예산안인 만큼 여느 해보다 철저하고 꼼꼼한 심의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 집단과 납세자인 국민의 당부였지만 국회의원들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예산안 늑장 처리는 해마다 반복되는 병폐다. 여야는 이런 폐해를 개선하기 위해 2014년 ‘국회선진화법’을 통해 ‘예산안 자동 부의제도’를 도입했다. 11월30일까지 심의를 마치지 못하면 예산안을 본회의에 자동으로 상정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2014년만 제외하고 4년 내리 시한을 어겼다. 자신들이 만든 법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런 ‘집단배임’도 없다.늑장 처리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쏟아지는데도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달라지지 않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집단배임’으로 내모는지 원인을 철저하게 파헤쳐서 개선책을 마련할 때가 됐다. 그런 점에서 선진국들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대통령이 매년 2월 첫째 주에 예산안을 제출하면 의회는 회계연도 시작(10월1일) 전인 9월30일까지 8개월에 걸쳐 심의를 거듭한다. 영국 독일 프랑스 의회는 4, 5개월간 다른 현안보다 우선해 예산안을 심의한다. 영국 캐나다 등은 예산안 편성 단계부터 의회와 행정부가 머리를 맞대는 ‘예산안 사전 심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은 회계연도 120일 전까지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되지만, 국정감사 등에 밀려 11월이 돼야 심의에 들어간다. 예산안 심의 기간이 한 달에 불과하다. 그나마 정쟁으로 지난 10년간 예산안조정소위원회의 연 평균 가동일은 15일에 그쳤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나라 살림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정기국회에서는 예산안 심의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국정감사를 다른 시기에 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다른 주요 국가들처럼 국회 예산관련 위원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상설 위원회 체제로 운영해 충분한 심의 기간을 확보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매년 예산안 심의를 최하순위로 다루는 관행을 언제까지 내버려둘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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