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공씨책방과 임대차보호법

박상기 < 법무부 장관 >
공씨책방은 1972년 경희대 앞(서울 회기동)에 처음 자리잡은 중고책방이다. 그동안 소중한 지식이 담긴 오래된 보고(寶庫)를 수많은 사람이 찾았다. 서울시도 이런 공씨책방의 가치를 인정해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했다.

공씨책방은 1995년부터 신촌으로 옮겨 운영됐다. 2016년 새로 바뀐 건물주는 월 차임을 두 배 이상 올려주지 않으면 퇴거하라고 요구했고, 공씨책방은 결국 소송에서 패소해 신촌을 떠나야 했다. 존폐의 위기에 놓였던 공씨책방은 올해 성수동에 새로이 자리잡았다.일본에는 ‘시니세(노포·老鋪)’가 많다. 도쿄에 있는 고서점가인 진보초(神保町)는 물론 지방 소도시에 가면 대대로 가업을 이어온 점포와 소기업들을 볼 수 있다. 지난해 도쿄상공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1000년 된 시니세는 7개, 100년 이상 된 곳은 3만3000여 개에 달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노포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에 일본 시니세처럼 한자리를 오래 지키는 점포가 드문 데는 임차인 보호에 미흡한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도 그 원인이 있다. 대표적으로 현행법상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기간은 최대 5년이다. 임대인이 합의를 원치 않아 5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상가를 비워주길 원한다면 어떨까. 임차인은 임대인의 차임 인상 요구에 응하거나 가게를 옮겨야 한다. 대규모 점포인 전통시장의 경우 영세한 임차인들이 스스로의 노력과 비용으로 상권을 형성하고도 권리금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 역시 현행법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법무부는 임대인의 과도한 임대료 인상을 억제하고, 임대인과 임차인이 상생할 수 있는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전문가들이 참여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현장 정책 간담회를 열어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논의 과정을 통해 상가 임차인들이 적어도 10년은 한 장소에서 계속해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전통시장을 권리금 보호 대상에 포함하는 개정안에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법무부는 이런 의견들을 반영해 법 개정을 추진했고, 이제 국회에서의 개정을 기다리고 있다. 법 개정만으로 당장 공씨책방이 100년 이상 영업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가게나 소기업이 전통을 이어가며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한다는 의미가 있다.

상권은 건물주가 아니라 임차인의 노력으로 형성되는 일종의 문화권이다.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통해 쌓인 평판과 전문성의 결과다. 이번 법 개정은 이런 문화권 형성의 토대를 마련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