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경제의 천동설 vs 지동설

"정책 방향착오…'나홀로 불황'
"서민만 골라죽인다"는 역설 초래
시장·기업의 '성장 견인' 인정해야"

오형규 논설위원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펄펄 끓는 폭염 속에서도 경제는 엄동설한이다. 수출 이외에 모든 숫자가 나빠지고 있다. 차례로 무너져 내리는 듯하다. 선진국들의 일자리 풍년이 이상한 건가, 있던 일자리마저 사라지는 이 나라가 이상한 건가. 바닥 민심이 예사롭지 않다. “서민만 골라죽인다”는 댓글이 난무한다. 천하의 드루킹이 와도 ‘쉴드’가 불가능할 것 같다.

이 지경이 된 원인은 복합적이다. 고령화, 낮은 생산성, 혁신 규제, 신산업 미미, 기업가 정신 약화, 노동시장 콘크리트화, 정실주의…. 경제성장률이 세계 평균을 밑돈 지 벌써 8년째다. 구조적 부진을 현 정부 책임으로만 돌리면 억울해할 것이다.하지만 ‘확정적 고의’는 아니더라도 ‘미필적 고의’ 혐의는 충분하다. 글로벌 호황기의 ‘나홀로 역주행’은 내재적 요인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지난 1년 반 동안 바뀐 것은 정권과 ‘소득주도 성장정책’뿐이다. 결과가 이럴 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부도덕한 것이다.

출발부터 소득주도 성장은 인과관계 오류를 내포했다. 경제성장의 결과물인 일자리와 소득을 성장의 ‘전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마차를 말 앞에 둔 격’이란 비판이 나온 이유다. 오도된 이념과 책상물림의 관념 속에서 잉태된 ‘유사(類似) 이론’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하다. ‘J노믹스’ 전반에는 시장과 기업에 대한 부정과 불신에다 국가가 다 할 수 있다는 설계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

그런 점에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국가주의’ 논쟁을 제기한 것은 음미할 만하다. 하지만 여당 반응이 “그럼 독재라는 거냐”는 수준인 것은 유감이다. 국가가 시장과 개인의 삶에 과잉 간섭한다는 비판의 의미조차 제대로 파악 못 했다는 고백처럼 들린다. 여태껏 가격, 임금, 노동조건, 기업 경영, 사적 계약 등에까지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관념이 아닌 현실에서 소득주도 성장이 파탄 났다는 증거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일자리 쇼크, 빈곤층 소득 감소, 자영업 몰락, 중소기업 탈출 등 차고도 넘친다. 그럼에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청와대의 맹목과 아집을 보면 중세 유럽에서의 천동설이 떠오른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물론 루터 같은 종교개혁가조차 “여호와가 그 자리에 멈추라고 명령한 것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라고 성서에 써있다”며 지동설을 비난했다. 하긴 소득주도 성장도 대선공약집에 써 있긴 하다.

전제부터 틀린 이론으로 세상을 재단하면 예외만 주렁주렁 달린다. 경제와 일자리 부진을 폭우 탓, 기저효과 탓, 인구변화 탓, 전 정권 탓을 하다 급기야 국내에선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신자유주의 탓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핑곗거리를 찾아도 경제·민생이 무너지면 정부·여당이 ‘독박’을 써야 한다. 소득주도로 경제가 성장하긴커녕 생산·투자·소비·심리까지 일제히 뒷걸음질이라면 이제라도 그 자체를 의심해 보는 게 정도(正道)다. 간판만 ‘포용적 성장’으로 살짝 바꾸고 “대통령이 여섯 차례나 언급했었다”며 횟수를 셀 때가 아니다.본래 코페르니쿠스도 평생 천동설을 연구해온 성직자였다. 그가 천동설을 의심하게 된 것은 지구를 우주 중심에 두면 원(圓)을 그려야 할 금성, 화성의 궤도가 찌그러지고 심지어 오락가락하는 모순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발상을 180도 뒤집어 지구 대신 태양을 중심에 두자 천동설의 무수한 오류가 단숨에 해소됐다.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이다.

어떤 정권이든 경제를 실험해보고 실패해도 용인해 줄 시간이 우리에겐 없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천동설을, 성장과 일자리의 원천인 시장·기업 중심의 ‘지동설’로 과감하게 전환해야 한다. 시장과 기업을 부정하고 성공한 나라는 없다. “아무리 강한 정권도 정치는 민심을 못 이기고, 경제는 시장을 못 이긴다.” DJ정부 실세였던 박지원 의원의 조언이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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