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도종환 장관 "책 안 읽으면 '내면의 사막화' 진행… 전시관람료도 소득공제 추진"

'문화국가 도약' 기치 내건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만난 사람=정태웅 레저스포츠산업부 부장
교사, 시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문재인 정부 첫 문화체육관광부 수장으로 발탁된 도종환 장관은 “취임 후 1년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앞으로 할 일은 더 많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문화체육관광부의 시간은 다른 어느 부처보다 숨 가쁘게 흘렀다. 올해 초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결정했다.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스포츠와 함께 문화 교류의 물꼬가 트였다. 주 52시간 근무 시대를 맞아 여행과 건강, 문화생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문체부가 해야 할 일은 더 늘었다. 국내 관광산업 활성화에 힘을 보태고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끊긴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도 되살려야 한다. 지난해 6월 취임해 2년 차를 맞은 수장의 어깨는 여전히 무겁다. 지난 19일 서울 서계동 문체부 서울사무소에서 도종환 장관을 만났다.

▶취임한 뒤 1년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만난 사람=정태웅 레저스포츠산업부 부장
“이달 북한 선수단이 참가한 코리아오픈국제탁구대회(7월17~22일)가 열렸고 다음달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아시안게임(8월18일~9월2일)이 개최됩니다. 단일팀 구성에 대해 계속 대화하고 있습니다. 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8월31일~9월15일)에도 북한 선수들이 오고 가을에는 서울에서 통일농구경기가 예정돼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종교단체 방북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교류에 대한 문의와 제안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올 3월 ‘봄이 온다’ 평양 공연에 이은 ‘가을이 왔다’ 공연 준비는 잘돼갑니까.“공연장이 섭외돼야 일정을 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 주요 공연장은 1년치 대관이 돼 있어 확보가 어렵습니다. 국립극장은 내부 수리 중이고요. 그래서 서울뿐 아니라 경기 고양시 등 수도권과 지방에 있는 대규모 공연장도 알아보고 있습니다. 공연장을 정해야 몇 가지 일정을 갖고 북쪽과 논의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달부터 도서·공연비 소득공제가 시행됐는데 혜택이 너무 작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소득공제로 세금이 덜 걷히니 재정당국으로선 당연히 반갑지 않은 제도입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설득해 이룬 성과입니다. 미흡할지라도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일단 도입했으니 차츰 공제 비율을 높여가고 신문·잡지 구독료와 전시관람비 등으로 범위도 넓혀갈 것입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해달라고 요구하면 시작하기도 어렵습니다.”
▶올해를 ‘책의 해’로 지정했는데요.

“성인 열 명 중 네 명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습니다. 나머지 여섯 명은 몇 권이나 읽을까요. 이런 통계를 보면 문득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라는 걱정이 듭니다. 바빠서 책을 못 읽는다고 하지만 스마트폰은 10분에 한 번씩 검색하지 않습니까. 책은 읽으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런 여유도 없다면 내면의 사막화가 진행 중인 거죠. 서서히 죽어가는 삶이나 다름없습니다.”▶영화,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는 주 52시간 시행에 대한 걱정이 큽니다.

“게임, 영화업계 등 사업장별로 현장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영화도 정해진 촬영시간에 찍고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밤 촬영도 있지만 유연근무제 탄력근무제 근무간주제 등 다양한 근무 형태가 있어서 가능한 것입니다. 탄력근무 기간도 우린 3개월이지만 거긴 6개월이죠. 필요에 따라 제도를 보완해가야 합니다. 업계 의견을 충분히 듣고 그것이 반영되는 형태로 제도를 정착시켜 나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과로사회’ 탈출은 꼭 필요합니다. 과로와 사고 등으로 일터에서 연간 800~900명이 사망합니다. 5년간 5000명이면 큰 전쟁을 치른 것과 다름없는 사망자 수입니다. 이렇게 일 때문에 죽어가는 삶에서는 벗어나야죠.”

▶올해부터 근로자 휴가지원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만 명 예산으로 잡은 근로자 휴가지원사업(개인이 20만원을 부담하면 기업과 국가가 10만원씩 보태 국내 여행비로 지원)에 10만 명이 신청했습니다. 커지는 여행 수요를 확인할 수 있었죠. ‘놀러 가는데 돈을 준다’고 국회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가에서 10만원을 지원해주면 휴가지에서 70만원을 쓰고 옵니다. 내수 진작, 경제 활성화로 이어져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국내에는 놀러 갈 만한 데가 없고 외국인 관광객의 지출 규모도 작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통계로 보면 지난해 국내 관광에 쓴 지출 규모가 전년 대비 3조7000억원 늘었습니다. 실제로는 국내 여행을 다니면서 쓰는 돈도 늘고 있는 겁니다. 올해는 해양수산부가 어촌과 어항을 현대화하는 ‘어촌뉴딜 300’과 함께 해양관광 활성화를 추진하려 합니다. 아름다운 섬, 가고 싶은 섬 300곳 정도를 관광지로 가꾸는 거죠. 국내 700만 명에 이르는 낚시 인구 수요만 해도 클 겁니다. 주말만 되면 낚시를 위해 550만 명이 새벽부터 움직인다고 하니까요.”

▶북한과의 관광 교류도 본격화될까요.

“남북 대화가 무르익으면서 동해선을 연결해서 러시아를 지나 유럽까지 갈 수 있다는 기대와 열망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문화, 스포츠 교류와 달리 관광은 경제제재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철도사업 등은 북쪽에서도 관심이 많지만 제재가 풀려야 논의해볼 수 있는 만큼 시간이 걸릴 겁니다.”

▶비무장지대(DMZ) 관광도 바뀐다고 들었습니다.

“DMZ를 기존 반공, 안보가 아니라 평화 관광 코스로 탈바꿈시킬 계획입니다. DMZ 주변 ‘10경(景)10미(味)’를 지정해서 좋은 경치와 맛집을 소개하고 축제와 열차관광을 연계하는 프로그램도 준비했습니다. DMZ 횡단 걷기, 자전거 타기도 진행하고요. 지난해 220만 명이던 DMZ 방문객이 올해는 450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국방부와 상의해 관광에 필요한 지역의 지뢰 제거 작업을 추진하고 교육부와 논의해 DMZ를 학생들의 통일 교육 현장으로도 활용할 생각입니다.”

▶관광업계에서는 관광진흥기금을 활용한 융자지원제의 문턱이 너무 높다는 불만이 있습니다.

“담보가 없는 영세업체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내년부터는 신용보증재단중앙회와 협약을 체결해 신용보증을 통한 융자가 가능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신용보증재단중앙회에 10억원을 출연하면 그동안 담보가 부족해 소외됐던 300여 개 영세 관광업체에 5000만원 수준의 신용보증서를 공급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관광기금 융자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시설의 운영과 관리에 대한 걱정이 나오고 있습니다.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 시설을 짓고 국가가 사후 활용까지 지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광주 창원 등 세계대회를 유치한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운영비를 지원해 달라고 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이번에 원칙과 기준을 제대로 마련해야 혼란이 없겠죠. 지원하겠다는 방침은 정해져 있습니다.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는 용역을 통해 충분히 검토한 뒤 방향을 정할 것입니다.”

▶2016년 시행한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통합정책이 아직 뚜렷한 성과가 없어보이는데요.

“평창동계올림픽 때 보니 세탁소를 운영하다 잠시 문을 닫고 오는 유럽 선수가 있더군요. 생활체육을 통해 오랫동안 갈고닦은 기량이 세계적인 수준이 되니 올림픽에 출전하는 겁니다. 일본도 과거 도쿄올림픽 이후 생활체육으로 전환하고 스포츠클럽을 활성화해 선수를 육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합니다. 시·군별로 스포츠클럽이 생기고 야구 마라톤 사이클 동호회에서 국가대표 선수가 나올 수 있습니다. 단시간에 이뤄질 일은 아닙니다. 일본도 30년이 걸렸습니다. 과도기에는 국제대회 성적이 떨어질 우려도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겠죠. 국위 선양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 건강이니까요. 집에서 걸어서 10분이면 체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시설도 늘릴 예정입니다.”

■도종환 장관은…

《접시꽃 당신》 펴낸 시인·교사… 국회 입성 후 문체부 수장 맡아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세상이 불난 듯이 요란해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어느새 조금씩》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업무 수첩 뒤편은 연필로 날리듯 쓴 글씨가 가득했다. 틈나는 대로 책을 읽으며 기억하고 싶은 구절은 옮겨 쓴 것이다. 부리에 물을 담아 산불을 끄려는 벌새 이야기는 최근 서울과 세종을 오가는 기차에서 읽은 책이라고 했다.

스물두 살 고향인 충북 청주에서 교직을 시작했을 때도, 시인으로 등단해 시집 《접시꽃 당신》이 베스트셀러가 됐을 때도, 야당(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정치생활을 시작했을 때도, 그리고 문체부 장관이 된 이후도 변함없는 것은 독서 습관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자기 안에 아름다운 가을을 지니고 있다’는 지난해 국내 계절관광 캠페인 문구도 도 장관이 직접 지었다. 시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은 ‘poem’을 넣은 이메일 주소에서도 엿보인다. 시인 장관은 책을 읽듯 틈틈이 시도 쓰고 있다.△1955년 충북 청주 출생 △원주고 △충북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1977년 중학교 교사 △1984년 시인으로 등단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투옥 △1998년 복직 △19·20대 국회의원 △2016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2017년 6월~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리=윤정현/조희찬 기자 hi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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