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의 성공방정식… 3세대 K팝, '사람'을 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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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3포 세대, 5포 세대. 그럼 난 육포가 좋으니까 6포 세대. 언론과 어른들은 의지가 없다며 우릴 싹 주식처럼 매도해.”
청년들의 고통을 똑바로 직시하며 날카롭게 세상을 겨냥하는 가사. ‘쇼미더머니’에 나올 법한 래퍼의 노래처럼 보인다. ‘쩔어’란 제목의 이 노래는 최근 세계를 휩쓸고 있는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의 작품이다.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 이후로 K팝이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적은 없었다. 미국 빌보드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소셜 50’ 차트에서 이들은 1위를 기록했다. 통산 50번째 1위다. 미국 유명 토크쇼에 잇따라 출연했고, 영국 BBC는 그들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서양 사람에게 익숙한 힙합 음악을 기반으로 한 것도 물론 인기 비결 중 하나다. 더 큰 비결은 그들의 음악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다. “억압만 받던 인생. 네 삶의 주어가 되어 봐(노 모어 드림).” “내 일주일 월화수목 금금금금(고민보다 Go).” 상처받고 얼룩진 ‘사람’에게 노래로 위로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3세대 K팝이 ‘사람’을 향하고 있다. 싸이 열풍 이후 정체돼 있던 K팝 시장에 방탄소년단은 새롭게 ‘사람’의 길을 열고, 변곡점을 마련하고 있다. K팝 관계자들은 지난 20여 년 동안 줄곧 글로벌 시장을 외치며 많은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아시아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전략만 있고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젠 멤버도, 노래도, 소통도 모두 사람을 향하고 있다. 그 결과 그 목소리는 해외시장에도 닿기 시작했다.
K팝은 싸이를 제외하곤 아이돌 위주로 확산돼 왔다. 1990~2000년대 아이돌그룹은 후크송을 기반으로 일본, 동남아시아에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지속력과 파급력 모두 약한 편이었다. 2010년대 들어선 K팝의 산업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됐다. 대형 기획사들은 처음부터 미국, 중국 등 보다 넓은 시장을 타깃으로 아이돌그룹을 내놓기 시작했다. 더 화려한 퍼포먼스를 위해 멤버 수도 10명 이상으로 늘렸고, 외국인 멤버도 뽑았다.하지만 아무리 다양한 전략을 취해도 한계가 있었다. 대중의 피로감은 그만큼 쌓여갔다. 정작 가장 중요한 ‘사람’에 대한 관찰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정은 사랑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노랫말엔 사랑이 넘쳐났고, 아이돌은 시장에서 하나의 ‘상품’처럼 취급됐다. 지나친 상업화로 결국 국내에서도 팬덤의 주기가 짧아졌고, 해외에 열기를 전달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다.
이와 달리 3세대 K팝은 전략에서 보다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사람’이란 음악의 본질로 돌아갔다. 중소형 기획사에서 만들어진 방탄소년단엔 외국인 멤버가 없다. 찍어낸 듯 획일화된 아이돌 음악이 아니라 자유분방한 힙합과 함께 멤버들의 각자 개성을 살려냈다. 노래에 사람을 담으려는 노력은 다양한 예술 분야의 접목으로 이어졌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김춘수의 시 ‘꽃’도 그들의 작품에 녹아 있다.
팬과도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났다. 앨범이 나오면 홍보 영상을 띄우는 정도가 아니라 일상 자체를 공유했다. 다른 아이돌그룹보다 유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많은 입소문이 날 수 있었던 것도 사람을 기반으로 한 SNS의 특성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Mnet에서 방영한 ‘프로듀스 101 시즌 2’를 통해 탄생한 ‘워너원’도 결국 사람과 연결된다. 이 방송은 연습생에 불과하던 무명의 개인에게 공감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시청자에게 줬다. 누군가를 발견하고 선택하는 주체가 되면 감정은 투영의 단계에 들어선다. 중소형 기획사가 선보인 방탄소년단을 발견한 팬들에게도, 직접 멤버를 선택해 아이돌로 탄생시킨 워너원 팬들에게도 이 공식은 그대로 적용됐다.
아이돌의 어원은 ‘이미지’나 ‘형상’을 뜻하는 라틴어 ‘idolum’이다. 현실에 없을 것만 같은 ‘종교적 우상’을 말한다. 그동안 업계 관계자들은 아이돌을 어원처럼 신적 존재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그 부작용으로 사람의 영역에선 금방 잊혀졌다. 우리는 이제 3세대 K팝 주자들로부터 ‘내려온 우상’을 발견한다. 감정을 가까이서 느끼고 나눌 수 있는. 이제 이들은 누구와도 친구가 될 준비가 돼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를 받아줄 해외 ‘사람’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