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소녀 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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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초대 로마 왕 로물루스의 고민은 인구부족이었다. 대규모 이주단지를 마련하고 사람들을 불러들였지만, 몰려드는 건 얼치기 사내들뿐이었다. 필요한 건 여자였다. 고심하던 그는 수확축제에 참가한 이웃나라 사비니의 처녀 수백명을 납치해버렸다. 사비니가 항의하자 정식 아내로 맞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이 일로 전쟁까지 벌어졌으나 결국 그녀들은 로마의 여자가 됐다.
이 사건은 서양에서 신랑이 신부를 안아 들고 신방 문턱을 넘는 풍습으로 이어졌다. 얼핏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우리의 ‘과부 보쌈’과도 비슷하다. 밤중에 여자를 보자기에 싸서 훔쳐오니 그럴 만하다. 그러나 사전에 은밀히 합의가 돼 있었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동서양 가릴 것 없이 여자를 납치한 이유는 대부분 남녀 성비 불균형이었다. 결혼 적령기 여성이 모자라서 그랬던 것이다. 그러나 성도착증이나 사육본능 등 정신병적 집착에서 오는 흉악범죄도 많았다. 여성 4명을 감금하고 오랫동안 성폭행해온 러시아 남성, 15세 소녀를 가둬놓고 성노예로 삼은 미국 농장주, 소녀 4명을 차례로 납치해 잔인하게 살해한 일본의 연쇄살인범….
영화 ‘3096일’의 실제 주인공인 캄푸쉬는 납치된 지 8년 만에야 기적적으로 탈출했다. 10세 때 등교하다 붙잡혀간 그녀는 지하에 갇혀 살다 도망친 뒤, 자살한 납치범을 동정하며 울기도 했다. 범인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돼 호감을 보이는 ‘스톡홀름 증후군’까지 겪은 것이다.
권력자들의 빗나간 야욕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2년 전에는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가 10대 소녀들을 납치해 성노예로 삼은 죄악상이 낱낱이 공개됐다. 북한으로 끌려간 피랍 일본인들의 눈물도 마르지 않고 있다.종교적 범죄 또한 경악스럽다. 지난달 나이지리아 여학생 300명이 집단 납치돼 단돈 12달러(약 1만2000원)씩에 신부로 팔리고 있다. 이들을 납치한 이슬람 테러 단체(보코하람)의 이름 뜻이 ‘서구식 교육 금지’라니 어이가 없다. 여자는 율법에 따라 집에서 애나 키워야지 학교를 다녀선 안 된다는 것이다. 올해만 벌써 학교 6곳이 공격을 당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기독교인 소녀를 납치해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고 무슬림과 강제로 결혼시키는 만행은 광범위하게 저질러지고 있다. 최근 이집트에서도 속출했다. 쇠퇴하는 무슬림 인구를 늘리기 위해 이슬람 강경주의자들이 부추기고 있다니 더 기가 막힌다. 너희도 당해봐야 알겠는가 하는 야만적 응보를 호통칠 수도 없고….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