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최태원·재원, 횡령 공모"…SK "김원홍 증언 왜 안듣나"

SK사건 항소심 - 더 세진 항소심 판결

"부회장이 주도…회장 지시 없었다면 불가능" 
법조계 일각, 증인채택 등 '심리 미진' 지적도
최태원·재원 SK 총수 형제 횡령 사건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1심과 달리 형제 모두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범죄를 공모한 사실이 인정되면서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 다만 SK 측에서 사건의 핵심 증인이라고 꼽아온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 대한 증인 신문 없이 선고가 강행돼 대법원에서 또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재원 부회장, 무죄→유죄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문용선)는 27일 오후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최태원 회장, 최재원 부회장 등이 김 전 고문과 공모해 투자위탁금을 마련하기 위해 SK 계열사로 하여금 펀드 출자금을 선지급하게 한 뒤 그 중 450억원을 김 전 고문에게 송금했다”고 사건의 전모를 정리했다.

이처럼 항소심 재판부는 SK 횡령 사건을 최 부회장이 주도했다고 판단했다. ‘범죄의 동기’가 최 부회장의 자금 수요였다는 것이다. 이는 1심 재판부의 판단과 다른 부분이다. 1심은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등으로 자금 압박에 처한 최 회장이 차입금 상환과 투자금 마련 등을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의 이런 판단은 검찰의 공소장 변경으로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문용선 재판장은 ‘최 부회장 주범, 최 회장은 종범’ 취지로 한 예비적 공소사실(주된 공소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대비한 보험적 공소사실)을 작성토록 검찰에 권유했다.재판부는 그러나 최 회장에게 조금 더 무거운 책임을 물었다. “최 회장의 지위와 지시가 없었다면 범행이 불가능했다”는 이유에서다. 또 최 회장 역시 범행 즈음에는 ‘김 전 고문에 대한 투자위탁금 마련’이라는 공통된 동기를 갖게 됐다는 점에서 범행의 본질은 최 부회장과 별 차이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양형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최고경영자가 투명한 의사결정 절차를 무시한 채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면 개별 기업의 경영과 우리 경제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며 “지위를 악용하고 사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1500억원의 자금을 내게 한 것은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김원홍 변수’ 작용할까재판부는 전날 국내로 전격 소환된 김 전 고문에 대한 증인 채택을 끝내 거부했다. 이번 사건의 ‘키맨’으로 지목돼온 ‘김원홍 변수’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앞서 최 회장 형제는 “펀드에서 수천억원을 송금받아 선물 투자에 관여한 당사자는 김원홍”이라며 그를 증인으로 채택해줄 것을 재판부에 줄곧 요구해왔다. 최 회장 측 변호인은 선고 전날 김 전 고문이 대만에서 송환되자 이날 오전 변론 재개를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원홍의 인간됨으로 미뤄 최 회장의 주장에 부합하는 통화 기록을 전혀 믿을 수 없다. 더욱이 증인신문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데 무의미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법조 일각에서는 ‘심리미진’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여환섭)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김 전 고문을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김 전 고문을 조사한 뒤 체포 시한인 28일 오후 5시30분 이전에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정소람/양병훈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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