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빈 라덴 왜 생포 못했나

9.11 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기습공격을 편 미군에 사살되면서 생포할 수는 없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일(미국 현지시각) 빈 라덴 사살을 발표하는 TV생중계 자리에서 "나는 취임 직후 리언 파네타 중앙정보국(CIA) 국장에게 빈 라덴 생포 또는 사살을 알-카에다와 전쟁에서 최우선 순위로 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이처럼 생포 혹은 사살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는 점에서 생포가 아닌 사살로 마무리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오바마는 이날 미 정보당국이 지난해 8월 빈 라덴의 파키스탄 내 은신처에 관한 믿을 만한 단서를 확보하고 추적해왔으며 지난주 빈 라덴 제거 작전을 단행할 충분한 정보가 확보됐다고 판단해 작전 개시를 승인했다고 설명한 점도, 생포가 불가능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대테러전에서 오사마 빈 라덴과 함께 양대 공적 중 하나였던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경우 2003년 생포돼 이라크 특별재판소에 넘겨졌었다.그는 이후 사형을 선고받고 2006년 교수형에 처해 졌다.

이같은 차이는 일단 미군의 기습작전에 대한 저항 여부에 따라 갈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발표에 따르면 빈 라덴 측은 미 대(對) 테러부대 헬기가 이날 새벽 파키스탄의 거처에 접근하자 로켓식 유탄 발사기를 발사하며 격렬하게 저항했고, 빈 라덴은 그 후 양측간 총격전 과정에서 사살됐다.반면 외딴 농장의 참호에 숨어 있던 후세인은 체포 과정에서 총알 한 발 발사되지 않을 정도로 이렇다 할 저항을 하지 않았다.

결국 빈 라덴의 경우 체포 과정에서 치열한 교전이 수반됐기 때문에 미군과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살이 불가피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처음부터 사살 쪽으로 기울지 않았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빈 라덴을 생포했을 경우 재판 등 신병처리 과정에서 국내외적 논란이 일 수 있고, 빈 라덴을 따르는 이슬람 급진세력의 반발과 공격이 거세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3년 9.11 테러범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가 체포돼 미국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되자 알-카에다가 그를 석방시키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에서 동시 다발 인질극을 벌이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특히 올해가 9.11 테러 10주년이라는 점에서 빈 라덴의 체포는 반미 지하드(성전)에 불을 지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k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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