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日 금리인상에도 엔캐리 트레이드 왜 끄떡 않나

日 금리인상에도 엔캐리 트레이드 왜 끄떡 않나
일본은행이 지난 21일 7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연 0.25%에서 0.5%로 올리자 국제금융계의 초점은 '엔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의 향방에 모아졌다. 도대체 이 자금은 얼마이고 누가 투자하는지,금리인상으로 이 자금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올 것인지를 분석해 본다.

◆엔캐리 트레이드의 정체엔캐리 트레이드라고 하면 헤지펀드로 대표되는 대형 국제 투기자본이 일본 시중은행에서 금리가 싼 엔화를 빌려 미국 한국 영국 등 일본보다 금리가 높은 나라의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등의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떠올린다.

이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엔캐리 트레이드에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주체에 의해 행해지는 다양한 자본투자가 포함돼 있다.

한국 내에서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 은행에서 원화대출보다 이자가 싼 엔화대출을 받아 생산설비를 구입했다면 이 역시 엔캐리 트레이드다.흔히 날아오는 '싼이자에 돈 쓰라'는 스팸메일도 대부분 저리로 조달한 엔화자금에 마진을 붙여 국내에서 대출,금리차를 챙기려는 엔캐리 트레이더들이 보내는 것이다.

특별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처럼 생각되는 캐리트레이드는 이처럼 우리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뿐만 아니다.루마니아나 라트비아에서 내집 마련을 위해 엔화 표시 모기지 대출을 받는 가정들도 엔캐리 트레이더들이다.

이들이 쓰는 엔화가 전체 엔캐리 트레이드의 대종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역은 보통 일본사람들이다.

시중은행에 저축해 둔 돈을 인출,해외투자펀드에 집어 넣는 평범한 일본인들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개개인은 투자금액이나 외환시장에서의 영향력이라는 면에서 미미하지만 이런 개미 투자자들의 해외투자를 모두 합할 경우 가장 큰 엔캐리 트레이더가 된다.

자신의 자금이든,빌린 자금이든 수익을 올리기 위해 엔화 자금을 금리가 높은 통화표시 자산으로 이전시키는 모든 행위는 엔캐리 트레이드라고 볼 수 있다.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좁은 의미에서 볼 때 외국투자기관이 일본에서 빌린 대출금액을 기준으로 그 규모가 2000억달러 정도에 달한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추정했다. FT는 동시에 시카고상업거래소(CME)의 엔화선물 순매도 포지션(엔화를 팔겠다고 계약한 물량)의 규모를 토대로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최대 1조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보도, 규모 추정이 그만큼 어려움을 반영했다.

◆엔캐리 늘수록 엔 약세 지속

다양한 엔캐리 트레이드의 공통점은 엔화자금이 일본보다 금리가 높은 다른 국가에 투자되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해당국 통화로 환전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엔화 '팔자' 주문이 지속적으로 늘게 마련. 그 결과 엔화가치는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떨어지게 된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 외환시장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엔화 값이 떨어지면 엔캐리 트레이더들은 금리차 이외에 엔화가치의 추가 하락에 따른 환차익도 얻게 된다.

나중에 갚아야 할 엔화의 값어치가 떨어지니 그만큼 이익이 늘어나는 것이다.

간단한 계산을 예로 들면 일본에서 연 0.5%의 금리로 대출받은 돈으로 기준금리가 연 7.25%인 뉴질랜드 국채를 사 놓으면 자기 돈은 한푼도 안 들이고 6.75%의 금리 차이를 수익으로 거둘 수 있다.

이 같은 '눈먼 돈벌이'가 가능하기 때문에 엔캐리 트레이드는 끊임없이 이뤄지고 엔화 약세 역시 쉽게 시정되지 않는 것이다.

◆세계경제에 미치는 부작용

가장 큰 문제는 전 세계에 지나칠 정도로 많은 유동성이 공급된다는 점이다. 엔화 자금은 수익을 좇아 전 세계로 흘러들어가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무차별적으로 투자돼 최근 수년간 전 세계적으로 자산버블(거품)이 생기는 데 일조했다.

엔캐리 트레이드는 또 미국의 과도한 경상적자로 대변되는 글로벌 불균형을 더 키우는 역할도 했다.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 중 일부가 미 국채를 사주지 않는다면 미국은 경상적자를 안고가기 어렵게 된다. 미 국채의 상당부분은 각국 중앙은행이 사들였지만 엔화 자금을 빌려 미 국채에 투자하는 엔캐리 트레이더들 역시 국채 소화에 커다란 몫을 담당했다. 엔캐리 자금은 미국뿐 아니라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의 국채 매입에도 상당부분 동원됐다.

따라서 엔캐리 트레이드는 글로벌 불균형을 확대 재생산시켜 세계경제 전체를 왜곡시킨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대규모 경상적자를 기록 중인 뉴질랜드의 뉴질랜드달러가 비정상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것도 엔캐리 자금에 의한 왜곡의 대표적인 사례다.

또 다른 문제는 최대 1조달러대로 추정되는 엔캐리 트레이드가 일시에 청산될(해외에 투자한 자산을 팔고 빌린 엔화 상환) 경우 올 수 있는 충격이다.

엔캐리 트레이드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1998년 엔화가치는 달러당 147엔까지 떨어졌으나 러시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으로 3일 만에 13%나 올랐고 두달여 만에 달러당 112엔까지 치솟았다.

세계 금융시장은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고 그 여파로 당시 세계 최대 헤지펀드이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가 결국 문을 닫았다.

이 같은 사태가 언제 다시 발생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BNP 파리바의 수석 통화전략가 한스 레데커는 "1997~98년과 유사한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며 "이머징 마켓 자산과 주식시장에서 버블 붕괴가 일어나면 엔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이 촉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 금리 인상에도 대거 청산 가능성 낮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엔캐리 트레이드가 급속히 청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도 다른 나라와의 금리 차이가 워낙 커 엔캐리 트레이드가 여전히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엔캐리 트레이드의 매력이 없어지려면 일본의 금리가 지금보다 추가로 2%포인트는 더 올라가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금리 인상으로 인한 급속한 청산 가능성은 당분간 거의 없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금리 인상보다는 1998년처럼 예상치 못한 외부적인 요인이 방아쇠 역할을 해 갑작스런 엔화가치 반등과 이에 따른 급격한 청산이 진행될 가능성이 오히려 더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에도 1998년과는 달리 글로벌 외환시장에 미칠 파급효과나 충격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 투자은행 관계자의 말을 인용,"헤지펀드를 비롯한 엔캐리 투자자들이 엔화가치 상승에 대비해 파생상품을 통해 상당부분 헤지를 해 놓았기 때문에 일시 충격이 오더라도 외환시장은 전보다 훨씬 면역력을 갖추고 있다"고 전했다.

김선태 기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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