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배고프고 미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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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모는 출산 전 아이를 입양시키기로 결정했다.
조건은 부모 모두 대졸자에 아이의 대학교육을 책임진다는 것.
그러나 약속했던 변호사 집안에선 딸이 아닌 아들이 태어나자 입양을 포기했다.
결국 그는 아이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고 다짐한 노동자 가정에 입양됐다.
오리건주 포틀랜드 리드 대학에 입학했지만 한 학기만에 그만뒀다.
막일을 하는 양부모가 평생 모은 돈을 등록금으로 날리는 것도 황당했지만 대학에서 뭘 얻게 될지 몰랐기 때문이다.
빈 병을 수집해 팔아 생활하고 도강(盜講)을 하면서 서예와 활자디자인에 몰두했는데 이게 매킨토시 컴퓨터 서체의 바탕이 됐다.
스무살 때 '애플'을 시작,서른살에 억만장자 대열에 올랐지만 경영전략 문제로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기막혔지만 새로 넥스트를 설립하고 애니메이션 회사인 픽사를 인수해 성공한 덕에 애플로 복귀했다.
1년 전 췌장암으로 시한부 삶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수술 후 괜찮아졌다.
이상은 애플컴퓨터 CEO 스티브 잡스(50)가 스탠퍼드대 졸업축사에서 털어놓은 내용이다.
'점 잇기'라는 주제의 이 연설에서 그는 좌절을 통해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웠다며 안주하고 싶은 마음과 상실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 꿈을 좇으라고 조언했다.
얘기는 이렇게 끝났다.
"늘 배고프고 미련한 상태를 유지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
잡스에 대한 평가는 둘로 나뉜다.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천재라는 것과 거칠고 독선적이라는 게 그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최근 보스턴 컨설팅 그룹이 고위 경영자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 제너럴 일렉트릭(GE) 경영진을 누르고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경영자로 꼽혔다.
'못말리는 CEO 스티브 잡스'라는 책에 의하면 잡스는 감정의 기복과 아집이 심한 인물로 등장한다. 자수성가한 사람의 특징으로 꼽히는 것들이니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헝그리정신을 지니고,매사 너무 약게 굴지 말고 멍청한 듯 제 길을 가라는 얘기만은 이땅 졸업생들도 충분히 기억할 만하다 싶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