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크리스마스 카드
입력
수정
'옷과 음식 잠자리가 있고,아침에 건강하게 눈뜰 수 있고,웃고 감사하며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수 있으면 당신은 진정 축복받은 사람!'
크리스마스 이브에 받은 e메일 카드의 문구다.
눈 쌓인 겨울밤,따뜻한 불빛 새 나오는 숲속 작은 집을 배경으로 뜬 메시지는 팍팍하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들었다.
크리스마스 카드는 이렇게 반갑고 정겹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이가 보낸 카드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하고 생각해주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함으로써 살아있음의 기쁨을 느끼게 한다.
정성껏 안부를 묻고 앞날의 복을 기원하는 인사를 곁들인 카드는 지친 심신을 달래고 '다시 시작해 봐야지'라는 의욕을 안겨준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받는 것도 좋다.
바로 옆에서 누군가 자신을 챙겨주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으니까.
크리스마스 카드가 생긴 건 1843년.영국의 H 콜이 고안해 왕립미술아카데미 회원인 존 C 호슬레이에게 그리게 한 걸 계기로 선보인 뒤 1870년 이후 우편제도가 발달하면서 세계로 퍼져나갔다.
오랫동안 연례행사로 주고 받던 크리스마스 카드가 줄었다.
이리저리 고르고 뭐라고 써야 좋을까 고민하다 띄우던 종이카드는 물론 e메일 카드도 적다.
종이카드는 e메일 카드에 밀리고,e메일 카드는 문자메시지에 밀리고,카드 대신 연하장을 보내는 경우가 많은 탓이라지만 꼭 그런 것같지만은 않다.
그보다는 크리스마스 카드마저 주고 받을 여유가 없는 게 더 큰 이유같아 가슴 아프다.
형편이 어려울수록 따뜻한 말 한마디,진심어린 마음을 담아 보낸 편지나 카드 한 장이 소중한 법인데 다른 사람의 처지나 심정을 배려할 여력을 갖지 못한채 눈 앞의 자기 일에 매달리느라 카드 한 장 띄울 염을 못내는 듯하기 때문이다.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촛대의 전설'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은 어디로 가는 지 모르는 채 어둠 속을 걸어갈 순 없는 법이야.이 세상 누구도 목표 없이 영원히 방랑하며 살 수는 없어.불빛을 비춰 길을 가르쳐줘야 해.안그러면 낙담해 쓰러질 거야.' 우리에겐 지금 위로와 격려가 절실하다.
따뜻한 카드 한 장은 길을 잃은 사람에게 빛이 될 수 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