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리포트] '검은 손'의 위선 .. 청정이미지 실종

경제 주간지인 비즈니스 위크가 최신호에서 파헤친 "월가 스캔들"이 미 증권계에 일파만파의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6개월에 걸친 추적 취재를 통해 "월가의 무공해 지대"로 불려져 온 아메리카 증권거래소(ASE)의 치부를 여지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ASE가 보여온 그 동안의 행보는 "겉"과 "속"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여실히 일깨워준다. 옵션 스페셜리스트와 장내 거래인 등 내부 전문가들 사이에 담합에 의한 주가 조작이 공공연히 자행돼 왔는가 하면, 장내 브로커들이 내부자 거래를 통해 불법적인 투자 이득을 챙기는 등 갖가지 불법이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일부 직원들이 자본력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의 상장 허용을 미끼로 할인된 가격에 해당 주식을 할당받는 등의 사례까지 일삼아 온 것으로드러났다. ASE의 이런 "검은 속내"는 그동안 이 거래소가 대내외적으로 자랑해 온 "청정 이미지"가 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았음을 웅변해주고 있다. 이로써 이미 숱한 불-탈법 사례로 끊임없이 당국의 조사를 받는 등 스캔들을빚어 온 뉴욕 증권거래소(NYSE)와 장외 증권시장인 나스닥(NASDAQ)에 이어 월가의 3대 증권시장이 모두 "검은 커넥션"과 연결돼 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셈이다. NYSE의 경우 장내 브로커들이 일부 증권사들과 이익 배분을 전제로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불법 주식 거래를 해 온 것으로 드러나 미 증권감독위원회와 연방 검찰 등 수사 당국이 조사를 진행 중이다. 증권시장 내부의 이런 불-탈법 사례는 말할 것도 없이 그 "비용"이 고스란히시장 참가자, 특히 투자자들에게 전가된다는 점에서 일반인들을 분개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로 ASE의 옵션 가격 조작을 들 수 있다. 거래소의 옵션 스페셜리스트들은 특정 주식의 옵션 매도 주문 및 매수 주문 가격 사이의 차이(스프레드)를 이중으로 조작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들과 연결돼 있는 기관 투자가들에게 적용하는 스프레드와 개인 투자자들의 경우에 대해 상당한 차이를 뒀다는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그만큼의 바가지를 쓰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개인 투자자들이 입어 온 피해 규모만도 매년 평균 1억5천만달러에 달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정이다. 투자자들을 더욱 경악시키고 있는 것은 ASE를 비롯한 미 증권시장들의 철저한 "패거리 의식"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이같은 각종 불법 관행이 자행되면서도 결정적인 물증이나관련 당사자들의 제대로 된 공개 증언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있는 게 이를 반증한다. ASE의 누적된 비리를 추적 취재한 비즈니스 위크의 경우도 일부 불법 사례를제보하거나 확인해 준 내부 직원들이 한결같이 익명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조직으로부터의 "보복"이 그만큼 가혹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감독 권한을 갖고 있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나 증권감독위원회 등 상부 기구들도 웬만한 부정 행위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경미한 제재에 그치는 등 "솜 방망이"만을 휘둘러 온 것으로 드러나 더욱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한마디로 미 증권계가 모조리 "한 통속"으로 움직여 왔다는 얘기다. 외환 위기의 수렁에 빠졌던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투명성 제고"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제시했던 것이 월가 집단이고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치 군사 경제 등 각 분야에서 "너 다르고 나 다른" 미국의 이중 잣대가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남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한" 고질을 바로잡지 않는 한 미국 자본주의도 결국은 한계에 이를 수 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3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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