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건축물에도 염치가 있어야 한다
도시연구가인 이경훈 국민대 교수는 2011년《서울은 도시가 아니다》(푸른숲)란 도발적 제목의 책을 냈다. 그는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나무와 숲 같은 전원적 요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걸어다닐 수 있는 거리라고 주장했다. 서울의 도시성을 해치는 요소를 연구한 그가 새 책《못된 건축》을 냈다.

건축가이기도 한 이 교수는 “건물이 완공될 때까지 건축가가 감당했을 수고와 고민을 생각하면 세상에 나쁜 건축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적한 숲이나 사막 한가운데 지은 건물이 아니라면 이웃 건물을 의식해야 하며 도시에 염치를 보여야 한다고 꼬집는다. 이를 어기고 건축주의 탐욕에 굴복한 건물은 ‘못된 건축’이란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가 본 서울의 반포 래미안은 입지, 규모, 학군, 교통 등 명실상부한 ‘국가 대표 아파트’지만 옳지 못한 건물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산책로엔 사람이 보이지 않아 문제다. 이 교수는 “서구에선 19세기 시도했다 실패한 전원주의가 한국에선 아직도 유행하고 있다”며 “좋은 도시 환경은 거리나 광장 같은 전통적 도시 공간”이라고 말한다. 국보 제1호 숭례문을 둘러싼 많은 빌딩도 ‘못된 건축’들이다. 파리 개선문 주변의 건물들은 스스로를 낮춰 문화재를 돋보이게 했지만 서울에선 문화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저 평면 면적과 높이만 강조했다는 얘기다.

반대로 긍정적인 건물도 있다. 경복궁 동편의 트윈트리타워는 궁궐 옆에 무작정 올린 것이 아니라 전통 건축을 존중하며 지은 건물이라고 옹호한다. 형태를 단순화해 전통 건축의 배경이 됐고, 건물 사이에 동십자각이 보이도록 만들어 전통 건축과 도시를 긴장감 있게 연결한다고 설명한다. 논란이 됐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도 마찬가지다. 도시 심장부에 난해한 건물이 들어섰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지만 오히려 새로운 건축 디자인으로 21세기 흐름을 끌어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 교수는 “법이 허용하는 건축행위에 일일이 간섭할 수는 없지만 도시 건축은 옆 건물, 거리, 도시와의 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이 건축 문화의 시작”이라고 재차 강조한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