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황제’ 푸이(오른쪽)와 그의 아버지 짜이펑. 섭정왕이었던 짜이펑은 북양군벌 위안스카이를 물리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려 했지만 무능해 개혁에 실패하고 만다. 한길사 제공
‘마지막 황제’ 푸이(오른쪽)와 그의 아버지 짜이펑. 섭정왕이었던 짜이펑은 북양군벌 위안스카이를 물리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려 했지만 무능해 개혁에 실패하고 만다. 한길사 제공
김명호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국내의 대표적 중국학자이자 ‘자료로 승부하는’ 저자다. 김 교수는 1990~1999년 중국의 권위 있는 인문학 출판사인 싼롄(三聯)의 서울지점 대표를 지냈다. 그는 이 시절 중국인들도 함부로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 인맥을 쌓았다. 특히 베이징과 홍콩, 대만을 넘나들었던 문화의 거장들, 일명 ‘문화노인’들과 교류하며 귀한 자료를 얻었다.

그가 중국을 이야기할 때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2012년에 나온《중국인 이야기 1, 2》도 그랬고 이번에 나온《중국인 이야기 3》도 마찬가지다.

[책마을] 中·대만 3통시대 시작은 '모스크바 인연'
첫 번째 이야기는 1978년부터 시작한다. 대만에 서신왕래, 직항로 개설, 교역 등 이른바 3통(三通)을 요청하는 전국인민대표자대회 명의의 편지가 발단이다. 이 편지 뒤엔 대륙의 지도자 덩샤오핑과 대만의 국부 장제스의 아들인 장징궈(蔣經國)의 인연이 숨어 있다. 덩샤오핑과 장징궈는 1925년 모스크바에서 같이 공부한 인연이 있다. 고민을 거듭한 장징궈는 결국 본토와의 교역을 묵인하라고 지시한다. 1988년 장징궈가 급서하자 덩샤오핑은 “그가 건재했다면 3차 국·공 합작은 가능했을 것”이라며 한탄한다.

마오쩌둥 사망 뒤 혁명 원수들은 손을 잡고 4인방(왕훙원·장춘차오·장칭·야오원위안)을 몰락시킨다. 그 다음에 부상하는 사람은 문화혁명 후 좌천당했던 덩샤오핑이다. 마오 사망 후 권력 투쟁을 설명하는 장면은 마치 한 편의 정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긴박하다. 중국 공산당을 만든 천두슈, 대륙과 대만에서 모두 추앙받는 위인 위유런, 군벌 위안스카이와 섭정왕 짜이펑 등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어느 부분을 읽어도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된다. 흥미로운 글 외에 접하기 어려운 사진들을 보는 재미까지 겸비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