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지도가 길찾는 용도 뿐?…돈·정치 모든게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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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지도
제리 브로틴 지음 / 이창신 옮김 / RHK / 692쪽 / 3만3000원
제리 브로틴 지음 / 이창신 옮김 / RHK / 692쪽 / 3만3000원
세계를 평면에 표현한 현존 최고의 세계지도는 영국박물관에 있는 ‘바빌로니아 세계지도’다. 기원전 700~500년께 만든 이 지도는 작은 점토판에 쐐기문자와 두 개의 동심원, 그 안에 임의로 그린 듯한 일련의 원과 긴 사각형, 곡선, 동심원 주위의 삼각형 8개 등이 새겨진 모양이다.
처음에는 진가를 몰랐으나 쐐기문자가 해독되면서 이 점토판이 지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소금바다’라는 이름이 붙은 바깥 원은 사람이 사는 세계를 둘러싼 대양을, 안쪽 원의 꺾어진 사각형은 유프라테스강, 이 강을 양분하는 직사각형은 바빌론을 나타낸다. 지도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제리 브로턴 영국 퀸메리대 교수는 “이 점토판은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바빌로니아의 우주론을 표현한 포괄적 도해”라고 설명한다. 바빌론을 중심에 놓고 세계의 기원을 상징과 신화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그가 쓴 《욕망하는 지도》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지도 12개를 중심으로 지도에 숨겨진 당대 제작자와 사용자의 욕망을 과학, 교류, 신앙, 제국, 발견, 경계, 관용, 돈, 국가, 지정학, 평등, 정보 등 12개의 코드로 풀어낸다. 이를 통해 저자는 지도가 당시의 사회적 욕망이 반영된 시대의 거울임을 보여준다.
150년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프톨레마이오스가 펴낸 ‘지리학’에 실린 세계지도는 보다 정확한 지도를 만들려는 과학적 노력의 결실이다. 장소를 표시하는 좌표와 투영을 위한 기하학 등 지리 정보를 숫자와 형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최초의 초보적 디지털 지리학’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의 4장에는 1402년 조선이 만든 동아시아 최초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도 나온다. 여기에는 조선이 실제보다 크게 그려져 있고, 중국은 물론 아프리카와 유럽까지 표시돼 있다. 저자는 이를 통해 중국 너머의 세계를 보려 했던 신생국 조선의 의지를 읽어낸다. 당대 최강의 제국이던 중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세계를 보는 독자적인 시각을 갖추려 했다는 것이다.
1507년 독일의 마르틴 발트제뮐러가 만든 ‘우주형상도’에선 탐험과 발견, 새로운 정보를 반영하려는 욕망을 읽어낸다. ‘우주형상도’는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해 ‘미국의 출생증명서’라고 불리는 지도다. 1529년 카스티야의 선박 조종사 디오구 히베이루가 만든 세계지도는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카스티야와 포르투갈이 향료 무역권을 놓고 충돌하다 지도에 선을 그어 경계선을 설정하면서 탄생했다. 이처럼 세계 전체를 바라보며 경계를 지으려는 욕망은 이후 유럽 식민정책의 도화선이 됐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1662년 네덜란드에서 출간된 상업적 지도책인 요안 블라외의 《대아틀라스》는 지도와 돈의 관계를 보여준다. 지도의 수요층이 확대되면서 지도는 상업적 목적에 따라 생산되고 거래되는 상품으로 자리잡았다는 것. 현대의 구글어스에 이르러서는 “다국적 기업의 장삿속이 앞서 인터넷 지도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정치 검열에 노출되며 사생활을 무시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저자는 “지도는 항상 그것이 나타내려는 실체를 조종한다”며 “세계의 역사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 세계 안에 있는 공간이 어떤 식으로 지도에 옮겨졌는지 탐색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책머리에 실린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의 해제가 친절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처음에는 진가를 몰랐으나 쐐기문자가 해독되면서 이 점토판이 지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소금바다’라는 이름이 붙은 바깥 원은 사람이 사는 세계를 둘러싼 대양을, 안쪽 원의 꺾어진 사각형은 유프라테스강, 이 강을 양분하는 직사각형은 바빌론을 나타낸다. 지도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제리 브로턴 영국 퀸메리대 교수는 “이 점토판은 단순한 지도가 아니라 바빌로니아의 우주론을 표현한 포괄적 도해”라고 설명한다. 바빌론을 중심에 놓고 세계의 기원을 상징과 신화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그가 쓴 《욕망하는 지도》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지도 12개를 중심으로 지도에 숨겨진 당대 제작자와 사용자의 욕망을 과학, 교류, 신앙, 제국, 발견, 경계, 관용, 돈, 국가, 지정학, 평등, 정보 등 12개의 코드로 풀어낸다. 이를 통해 저자는 지도가 당시의 사회적 욕망이 반영된 시대의 거울임을 보여준다.
150년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프톨레마이오스가 펴낸 ‘지리학’에 실린 세계지도는 보다 정확한 지도를 만들려는 과학적 노력의 결실이다. 장소를 표시하는 좌표와 투영을 위한 기하학 등 지리 정보를 숫자와 형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최초의 초보적 디지털 지리학’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의 4장에는 1402년 조선이 만든 동아시아 최초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도 나온다. 여기에는 조선이 실제보다 크게 그려져 있고, 중국은 물론 아프리카와 유럽까지 표시돼 있다. 저자는 이를 통해 중국 너머의 세계를 보려 했던 신생국 조선의 의지를 읽어낸다. 당대 최강의 제국이던 중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세계를 보는 독자적인 시각을 갖추려 했다는 것이다.
1507년 독일의 마르틴 발트제뮐러가 만든 ‘우주형상도’에선 탐험과 발견, 새로운 정보를 반영하려는 욕망을 읽어낸다. ‘우주형상도’는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해 ‘미국의 출생증명서’라고 불리는 지도다. 1529년 카스티야의 선박 조종사 디오구 히베이루가 만든 세계지도는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카스티야와 포르투갈이 향료 무역권을 놓고 충돌하다 지도에 선을 그어 경계선을 설정하면서 탄생했다. 이처럼 세계 전체를 바라보며 경계를 지으려는 욕망은 이후 유럽 식민정책의 도화선이 됐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1662년 네덜란드에서 출간된 상업적 지도책인 요안 블라외의 《대아틀라스》는 지도와 돈의 관계를 보여준다. 지도의 수요층이 확대되면서 지도는 상업적 목적에 따라 생산되고 거래되는 상품으로 자리잡았다는 것. 현대의 구글어스에 이르러서는 “다국적 기업의 장삿속이 앞서 인터넷 지도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정치 검열에 노출되며 사생활을 무시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저자는 “지도는 항상 그것이 나타내려는 실체를 조종한다”며 “세계의 역사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 세계 안에 있는 공간이 어떤 식으로 지도에 옮겨졌는지 탐색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책머리에 실린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의 해제가 친절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