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한 일을 보고 매우 황당했다. 나는 당신과 당신 가족이 이집트로 올 수 있게 7만5000루피를 구해줬다. 그런데 당신은 회계 담당자에게 지출 내역을 제출하지 않았다. (중략) 나는 당신에게 알 카에다 규정을 어길 경우 처벌받는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지도자 모하메드 아테프가 부하에게 보낸 메모의 일부다. 겉보기에 관료주의도 없고 위계질서도 무시할 것 같은 테러 조직조차도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로 영수증 처리는 철저히 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책마을] 알카에다 조직원도 비용처리 잘못하면 경리한테 혼난다
현대 사회의 모든 사람은 조직에 속해 있다. 출생과 함께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나고 학교·직장 등 다양한 조직에서 생활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조직은 경제학의 관심 밖에 속했다. 《경제학자도 풀지 못한 조직의 비밀》은 “왜 우리에게 조직이 필요한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저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경제학자들은 직장이나 조직을 ‘블랙박스’로 여겨왔다”며 “조직이라는 블랙박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은 경제학 종사자들의 관심 밖이었다”고 말한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1 대 1로 거래하던 과거의 시장에 비해 현대 사회는 매우 복잡하다. 생산자와 소비자 중간에 유통업자가 끼어들었다. 하나의 상품을 생산하려면 부품 담당, 기술 담당 등 전문성을 가진 수많은 사람이 함께 일하는 ‘조직’이 필요하다. 저자들이 “조직은 현대 사회의 ‘보이지 않는 손’과 같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조직은 시장과 달리 ‘가격’이 아니라 ‘사람’이 결정한다. 결정권이 있는 사람은 ‘상사’라고 불린다. 종종 규칙이 ‘결정’을 하기도 한다. 임금 수준이나 출근 시간, 휴식 시간의 횟수와 길이 등을 결정한다. 하지만 이런 규칙을 정하고 바꾸는 것 역시 ‘상사’다.

조직은 거래나 계약을 성사하기 위해 발전시켜온 최적화된 형태라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조직 내에서 불가피하게 생겨나게 되는 기능 장애들은 조직의 존재를 위한 타협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알 카에다 같은 테러 조직도 영수증 처리와 같은 업무들을 통해 조직을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몸담은 조직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고 온갖 장애물을 갖고 있지만 이는 ‘조직적 힘’을 만들어내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일종의 ‘거래비용’인 셈이다.

저자는 “아무리 똑똑한 개인이라고 해도 무능한 조직의 힘을 이겨낼 수 없다”며 “인류가 진화해 오고 생존해온 가장 큰 힘이야말로 바로 ‘조직을 만들어내는 힘’이다”고 설명한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