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北인권법, 민생보다 인권이 먼저
2005년 이후 국회에 9년 동안 방치됐던 북한인권법이 결실을 보게 될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신년 초부터 여야 대표가 한목소리로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고 나서서다. 북한인권법 제정의 의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이 북한 주민에게도 실현되게 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개선을 위한 인권의식 제고, 외부정보 유입의 법적 도구로 활용된다는 측면에서 유용한 법적·제도적 장치다.

북한 인권상황이 매우 열악하다는 엄연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보다는 당리당략의 정치논쟁에 매몰돼 아직도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이 북한 주민의 인권보호 최일선에서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보다 미국, 일본이 먼저 북한인권법을 제정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자칭 ‘진보’라는 인사들과 정당이 온갖 핑계와 구실로 북한인권법 제정을 저지·반대하는 모습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개선보다 북한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다는 반증이다. 자칭 ‘진보’ 세력들의 외면으로 인해 북한 주민의 인권개선이 지연되고 북한 전체주의의 기반이 더 공고해졌다는 역설은 자기 치부를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북한인권법이 국회에서 표류하게 된 근원은 법안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 하는 정치적 논쟁 때문이었다. 즉 ‘인권이 먼저인가, 민생이 먼저인가’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다. 북한인권법에는 인권신장이 최우선 가치가 돼야 한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궁핍한 북한주민에 대한 지원을 통해 민생을 개선하고 탈북자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권이 먼저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당이 지금까지 고수했던 ‘대북지원을 통한 민생 우선’ 정책에서 ‘인권 우선 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다. 바로 북한인권법은 순수한 인권 측면에서 출발해야만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차단할 수 있고 자유가 보장된 민생을 지속할 수 있다.

통일 전 동독의 인권유린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서독의 핵심 기구는 중앙기록보존소다. 이 기구는 공소시효와 무관하게 동독의 반법치·반인도적인 국가적 범죄행위 등에 대한 자료를 수집·보존해 통일 이후 형사소추가 가능하도록 했다. 서독의 중앙기록보존소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동독의 인권유린을 간접 제어하는 예방적 장치로서 기능했다. 서독 정부가 전체 독일인에 대한 보호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했으며, 통일 후 체제범죄 청산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중앙기록보존소는 통일을 기다리면서 동독에 거주하는 독일인의 인권을 지키고 체제범죄를 감시한 조용한 파수꾼의 역할을 했다.

북한의 인권실태가 동독보다 훨씬 열악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북한의 2인자 장성택이 처참하게 처형되는 과정은 반인권·반법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거대한 감옥 속에 갇힌 북한주민들의 인권실상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북한주민들의 인권유린을 끝내기 위한 규범적 장치는 북한인권법이며, 인권유린을 방지하고 제어할 수 있는 실질적 제도적 장치는 중앙기록보존소다. 따라서 북한인권법과 중앙기록보존소는 분리 불가능하다. 이런 제도적 완비는 한국 국민이 북한주민의 인권유린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이며, 북한주민들에게 자유통일의 희망과 용기를 전달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물론 북한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대북 인도적 지원은 지속돼야 하며, 북한주민의 인권개선을 위한 사람과 정보의 교류를 통해 인권의식도 북돋워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인권법으로 기능할 수 있다.

조영기 < 고려대 북한학 교수 bellkey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