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철학자들은 벌거벗은 임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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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사기 / 앨런 소칼 외 지음 / 이희재 옮김 / 한국경제신문 / 384쪽 / 1만8000원
“만일 어떤 텍스트가 난해하게 다가온다면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그 텍스트가 아무 것도 뜻하는 바가 없다고 하는 너무나 자명한 이유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보여줄 것이다.”
라캉, 보드리야르, 들뢰즈 같은 현대 철학자들의 지적 남용을 고발한 《지적 사기》가 10여년 만에 재출간됐다. 저자들은 “프랑스 철학자들은 계몽주의의 합리적 전통을 거부하고 자연과학 개념과 용어를 멋대로 남용하면서 모호한 주장으로 세계 지성계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일갈한다.
저자들이 이처럼 도발적인 책을 구상하게 된 것은 ‘논문 패러디 사건’ 때문이다. 저자 중 한 명인 앨런 소칼은 1996년 미국의 문화연구 전문지 《소셜 텍스트》에 ‘경계의 침범:양자중력의 변형 해석학을 위하여’란 제목의 패러디 논문을 투고했다. 그럴듯한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실은 이 논문은 억지와 후안무치한 궤변으로 가득 찬 가짜 논문이었다. 그런데 해당 잡지는 소칼의 논문을 특별호에 멋들어지게 실어주었다. 언론계와 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저자들은 “자크 라캉, 줄리아 크리스테바, 뤼스 이리가레이, 브루노 라투르, 장 보드리야르, 폴 비릴리오 등 현대 프랑스 철학의 거두들은 실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말한다. 빈약한 내용을 난해하고 위압적인 과학 용어로 포장해 독자들의 기를 누르는 심리전의 대가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학계 용어가 낯선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책에 인용한 지식인들의 글귀가 왜 불합리한지 해설을 곁들였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저자들은 “‘비합리적’이라는 말로 내가 가리키려는 것은 파악하기 어려운 어떤 감정 상태가 아니라, 정확히 허수라고 불리는 것입니다”란 라캉의 세미나 발언을 두고 “라캉은 ‘정확히’라는 본인의 말이 무색하게 무리수와 허수를 혼동하고 있으며 이 둘은 서로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꼬집는다.
저자들은 자연과학의 개념과 용어의 남용을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지만 1999년 출간 당시 그 의도와 무관하게 좌파에 가하는 우파의 총질이란 오해를 받았다. 좌우를 떠나 지식인들의 폭력적인 주장에 의문을 가진 적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라캉, 보드리야르, 들뢰즈 같은 현대 철학자들의 지적 남용을 고발한 《지적 사기》가 10여년 만에 재출간됐다. 저자들은 “프랑스 철학자들은 계몽주의의 합리적 전통을 거부하고 자연과학 개념과 용어를 멋대로 남용하면서 모호한 주장으로 세계 지성계를 오염시키고 있다”고 일갈한다.
저자들이 이처럼 도발적인 책을 구상하게 된 것은 ‘논문 패러디 사건’ 때문이다. 저자 중 한 명인 앨런 소칼은 1996년 미국의 문화연구 전문지 《소셜 텍스트》에 ‘경계의 침범:양자중력의 변형 해석학을 위하여’란 제목의 패러디 논문을 투고했다. 그럴듯한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실은 이 논문은 억지와 후안무치한 궤변으로 가득 찬 가짜 논문이었다. 그런데 해당 잡지는 소칼의 논문을 특별호에 멋들어지게 실어주었다. 언론계와 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저자들은 “자크 라캉, 줄리아 크리스테바, 뤼스 이리가레이, 브루노 라투르, 장 보드리야르, 폴 비릴리오 등 현대 프랑스 철학의 거두들은 실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말한다. 빈약한 내용을 난해하고 위압적인 과학 용어로 포장해 독자들의 기를 누르는 심리전의 대가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학계 용어가 낯선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책에 인용한 지식인들의 글귀가 왜 불합리한지 해설을 곁들였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저자들은 “‘비합리적’이라는 말로 내가 가리키려는 것은 파악하기 어려운 어떤 감정 상태가 아니라, 정확히 허수라고 불리는 것입니다”란 라캉의 세미나 발언을 두고 “라캉은 ‘정확히’라는 본인의 말이 무색하게 무리수와 허수를 혼동하고 있으며 이 둘은 서로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꼬집는다.
저자들은 자연과학의 개념과 용어의 남용을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지만 1999년 출간 당시 그 의도와 무관하게 좌파에 가하는 우파의 총질이란 오해를 받았다. 좌우를 떠나 지식인들의 폭력적인 주장에 의문을 가진 적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