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없이 극장 없고 작품성 없이 관객 없죠"
지난해 서울 명동예술극장은 2009년 재개관 이후 관객 호응도에서 최고의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극장이 자체 제작한 연극 다섯 편의 전체 객석 점유율은 90.5%에 달했다. 이 중 ‘러브 러브 러브’와 ‘햄릿’은 100%를 넘었다. 정규 좌석의 티켓이 일찌감치 매진된 데 이어 보조 좌석표까지 팔려나가서다. 이 정도면 영국 내셔널시어터나 일본 신국립극장에 비해서도 뒤지지 않는다. 이 극장이 이처럼 ‘명동 연극’의 부활을 알리며 짧은 시간에 ‘한국 연극 관람의 메카’로 자리잡은 중심에는 개관 때부터 극장을 이끌어온 구자흥 극장장(69·사진)이 있다. 지난주 극장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연극만 공연하는 극장에서 객석 점유율 90%는 쉽지 않은 기록입니다. 흔히 연극이 뮤지컬과 영화에 비해 한물갔다고 하지만 시설과 서비스가 좋은 공연장에서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작품을 올린다면 연극을 보러올 관객이 충분히 있다는 얘기입니다.”

구 극장장은 국내 연극 공연기획 1세대다. 서울고 시절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보고 연극에 빠졌고, 서울대(미학과 63학번)에 들어가서는 문리대 연극회장과 총 연극회장을 맡을 만큼 열성적으로 연극 활동을 했다. 졸업 후 극단 실험극장의 기획부장으로 공연계에 첫발을 디뎠고, 극단 민중·민예 대표와 의정부 예술의전당·안산 문화예술의전당 관장 등을 지냈다.

그는 34년 만에 복원된 명동예술극장의 성격을 ‘연극과 사람들을 친하게 하는’ 기능을 가진 연극 전문 제작 극장으로 정했다. 젊은 층과 옛 ‘명동 극장’에 대한 향수를 가진 중장년층을 아우를 수 있는 고전 작품을 중심으로 시대상을 대변하는 국내외 신작을 곁들여 레퍼토리를 짰다. “극장 운영은 곧 ‘관객 개발’이고, 관객 개발의 전제는 ‘좋은 작품’이죠. 삶에 대한 통찰과 위안을 줄 수 있는 연극의 교육적·본연적 기능을 가진 작품을 선정하고, 완성도 높은 무대를 꾸미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2011년 연임해 오는 11월 두 번째 임기가 끝나는 그는 “연극인과 관객들에게는 극장에 대한 신뢰를 쌓는 데 일정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작품성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공연을 마친 뒤 아쉬움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해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저의 ‘소박한 야심’이죠.”

올해는 그동안의 번역극 위주에서 벗어나 창작극 두 편을 제작한다. 오는 6~7월 김의경 작, 이윤택 연출의 ‘길 떠나는 가족’을 올리고, 11월께 지난해 ‘창작산실’ 공모에서 뽑힌 희곡 중 한 편을 초연할 계획이다.

최근 연극계 찬반 논란을 빚고 있는 명동예술극장과 국립극단의 통합 문제에 대해 그는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향으로 통합이 이뤄진다면 이상적인 방안”이라며 찬성 의사를 밝혔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