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옛 그림의 여백은 '그리지 않고 그린 것'
우리는 박물관 문턱을 드나들며 수없이 만나는 전통 수묵화를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은 채 문인화라는 이름으로 묶어 버린다. 그저 기법을 얘기하고 중국과 다른 점은 무엇이라는 등 피상적인 이해에 만족한다. 그러나 정작 문인화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문인들은 오랜 세월 그것을 부여잡고 끊임없이 그려왔는지에 대해 명료하게 답을 제시한 사람은 드물다.

《문인화, 그 이상과 보편성》은 저자가 오랫동안 한국 문인화를 연구하면서 느낀 그런 본질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 그것이 갖는 현재적 의미를 설명한다.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1장에서는 한국 문인화의 보편성 문제를 살피고, 2장에서는 한국화론(論)의 보편성을, 제3장에서는 한국 문인화의 대표적 인물인 강세황을 통해 그의 회화가 가지는 보편성과 한국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왜 시(詩)·서(書)·화(畵)가 문인들의 필수 교양인가, 왜 문인화가 동아시아 예술의 정점에 서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며 이런 문제는 결국 ‘사람답게 사는 길은 무엇인가’라는 보편적 가치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봤다.

따라서 한국 문인화가 추구한 보편적 가치는 제쳐둔 채 특수성, 독자성만 강조하는 우리 학계의 연구 경향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인화의 정신이 한국인의 체질적 문화인자와 만나 새로운 경지의 문인화를 이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 ‘맑고 시원함’을 추구한 한국 문인화의 특수성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백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눈여겨 볼 만하다. 그는 동아시아에서는 “진리나 도는 언어나 어떤 상징으로도 그려낼 수 없다”고 봤으며 그 점은 《노자》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말할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다)’라는 말에 압축돼 있다고 말한다. 우주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어떤 형상을 표현하면 이미 본질에서 벗어나게 되며 여백은 우주의 그런 변화를 ‘그리지 않고 그린 것’이 된다는 것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