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일제시대 소시민의 저항적 몸부림
1940년 10월21일 월요일 오후 4시30분. 서울 을지로에 있던 극장 황금좌에서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 ‘민족의 제전’을 관람한 경기중학교 학생 강상규와 친구의 대화. “어땠나?” “손기정, 남승룡 선수가 우승한 장면을 보니 유쾌했는데, 두 선수가 별로 환영받지 못한 것 같아 섭섭하기도 해.” “유쾌했다고…. 나는 슬펐다. 일장기가 올라가는 순간 나라 없는 비애를 느꼈다. 지금부터 목숨을 바쳐 반드시 나라를 독립시키고 다음 올림픽은 조선에서 개최하겠다.” 그로부터 세 달 뒤 그는 ‘조선 독립을 열망하는 불량 학생’으로 검거돼 징역 2년의 형을 받는다.

《식민지 불온열전》은 중일전쟁기에 불온한 언동을 했다는 죄로 일제에 검거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경기 안성에 사는 소작농 김영배는 자신의 사랑방에서 이웃에게 불온한 말을 했다고 검거되고, 강원도 산골 소학교 학생 김창환은 교실 벽에 ‘일본 폐지, 조선 독립’이라고 적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잡혀갔다.

당시는 일본 식민지 권력이 일상 영역에 침투하고 통제를 강화해 조선 사람들의 삶을 옥죄던 때다. 아침마다 일본 궁성을 향해 절하는 ‘궁성 요배’를 해야 했고, 창씨개명과 일본어 사용이 강요됐다. 일제 통치와 일왕에 대해 불평불만을 얘기하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끌려가기 일쑤였다. 일본의 압박은 독립전쟁을 했던 투사들뿐 아니라 평범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게도 적용됐다.

저자는 거대 역사의 쳇바퀴 속에서 작지만 강한 목소리를 냈던 ‘불온한 개인’의 삶에 주목하고 그들의 삶과 일상, 저항을 복원한다. 이 책은 역사서이면서도 논문 형식이 아니라 이야기식으로 구성돼 쉽게 읽힌다.

저자는 ‘불온 인사’들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보기 위해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의 ‘형사사건 기록’을 샅샅이 검토하고 당시 신문자료와 관련 문헌을 참조해 해당 지역을 직접 찾아가 친지와 관련 인터뷰를 했다.

저자는 “내가 하지 않으면 그들이 영원히 세상 빛을 보지 못할 것 같고, 큰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며 “역사학에서 민주주의는 이름 없고 역사 없는 사람들에게 제 이름과 역사를 찾아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