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성장률을 2.3%로 낮추어 잡은 것을 나무랄 이유는 없다. 의욕만 앞세워 747식 고무풍선을 허공에 날리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새 정부는 몇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우선 경기악화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없다. 묘사(description)만 있었지 분석도, 대책도, 설명(explanation)도 없다. 지난주 경제정책점검회의는 대통령이 참석한 첫 경제회의였다. 그런데 국가적 현안은 없고 관료들의 실무적 걱정거리만 토론되었다. 참석자 대부분이 예산 관료 출신이었던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대통령 회의를 준비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지난주 경제부총리가 소집한 첫 경제장관회의는 사진 한 장만 달랑 배포하고 말았다. 대통령 보고(報告) 전에는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친다면 소통 부재는 고질병이다. 현오석 부총리는 그렇게 권위주의적인 사람이 아니다. 실무자의 실수였을 것이다. 비서진의 통렬한 반성이 필요한 것이 인사문제만은 아니다. 어떻든 한참을 뜸 들이다 나온 새 정부 경제정책이라는 것이 나라 재정 펑크났다는 세입부족 타령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세입 추정치를 부풀려 6조원의 세수 펑크가 났다는 청와대 일각의 설명은 틀린 말이다. 세금이 안 걷히는 것은 경제가 곤두박질치고 있는 결과이지 누군가 거짓말을 했거나 세입 예상액을 부풀렸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경제가 추락하고 있는 것은 지난해 총선에서 대선까지 1년 내내 그렇게 떠들어댄 경제민주화 캠페인 덕분이다. 위로는 대기업에서부터 아래는 골목상인까지 그 누구도 경제활동과 생업에 더 이상 비지땀을 흘리지 않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명분이 무엇이든 감옥가기 싫으면 아예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반작용이다. 정치보조금 받는 것이 더 좋다면 생업에 매진하는 것을 어리석은 일로 보는 것도 당연하다.

더구나 엉터리 세수 추계라는 것도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 연말 국회에서 부랴부랴 복지예산을 조정하면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문제는 전체적으로 12조원의 세수부족이 생겼다는 것인데 이 역시 잘못된 설명이다. 세외수입에서 추가적으로 6조원의 정부수입 부족분이 생기는 것은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새 정부 방침 때문이다. 12조원 전부를 마치 누군가 고의로 부풀려놓은 것처럼 규정해버리는 것은 관료 정직성에도 어긋난다. 더구나 청와대 참모가 미국의 재정절벽(fiscal cliff)이나 시퀘스터(sequester)를 언급하는 것은 아주 부적절하다. 이들 단어는 오바마가 국가부채 문제를 은폐하기 위해 개발한 기발한 용어로 한국의 재정 사정을 평가하는 데는 쓸 수 없다. 오바마 재임 중에 미국 국가부채는 무려 6조4000억달러나 급증해 국회가 정한 16조4000억달러의 한도를 모두 소진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 한도를 넘어 부채를 더 내겠다는 정치 전술적 단어가 바로 ‘재정절벽’이요 ‘시퀘스터’라는 조어였다. 명석한 조원동 경제수석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그런 단어가 나왔다.

재정건전성으로 따지자면 그래도 이명박 정부가 나름의 노력을 다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가 별 망설임 없이 15조원이 넘는 규모의 적자국채를 언급할 수 있는 것도 이명박 정부가 재정적자를 막아왔고 곳간에 쌓아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재정 사용처라는 것도 그렇다. 복지충당을 위해 국채를 발행한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어야 마땅하다. 책임은 모두 지난 정부에 돌리고 12조원 전부를 경기부양용 추경인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박 대통령에게 어울리지 않는 레토릭이다. 복지는 이미 미끄러운 경사면(slippery slope)을 굴러내리기 시작한 상태다. 증세든 빚을 내든 솔직한 장기 계획이라야 국민의 동의를 얻지 않겠는가. 차라리 박근혜 정부 5년간 GDP 10%를 복지재원용 적자국채로 쓰겠다는 식이라면 찬성표를 던지겠다.

경제민주화를 논박하지 못하니 경기침체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고, 지하경제 양성화를 반박하지 못하니 세금 나올 구멍을 만들 수 없다. 아무리 영혼이 없는 관료라 하더라도 할 말은 해야 옳은 해법을 만들지 않겠는가. 대통령은 무오류이며, 금지된 언어가 많은 회의라면 어떤 정책이든 갈수록 겉돌게 된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