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딜러는 고달퍼
국내 은행과 외국계 은행에서 16년간 외환딜러로 활약한 이주호 HSBC 전무.그는 지난달 초 국제금융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큰 돈을 벌 수 있는 자리를 내팽개치고 외국 자본유출입 동향을 모니터링하는 조사직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그는 "자리를 옮겨 연봉이 많이 깎였다"고 말했다. 국제금융센터 직원들의 평균 연봉에 비해서는 많은 돈을 받지만 외환시장에서 딜러로 일할 때에 비해서는 70~80%가량 줄었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얘기다. 하지만 그는 "스트레스가 적어 새 일에 만족한다"며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 일하게 됐다는 점도 보람"이라고 했다.

이성한 국제금융센터 소장은 "우리 연봉 수준으로 외환딜러를 스카우트하기가 쉽지 않은데 마침 지원자가 있었다"며 "딜러들은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때문에 이론만 아는 박사들보다 자본유출입 동향을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기업은행에서 외환딜러로 일했던 박예나 씨도 최근 로이터통신으로 옮겨갔다. 외환담당 기자다. 시장에서 딜링을 하기보다는 정보 전달을 하는 업무로 바꿨다. 이 통신사는 현장감 있는 기사전달을 위해 외환딜러 출신을 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환딜러들의 '이탈'에 대해 현직 딜러들은 공감하는 분위기다. 한 투자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로 일하고 있는 K팀장은 "거액의 달러를 사거나 팔 때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해외 지점에서 새벽에 수시로 전화가 걸려와 밤새 잠을 자지 못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외환딜러들은 매일 숨막히는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아침 7시쯤 출근한 뒤 간밤에 열린 해외 외환시장과 주식시장 동향,각종 뉴스를 살펴본다. 서울 외환시장이 열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길만큼 바쁘다. 폐장 후에도 런던과 뉴욕 외환시장을 살피느라 사실상 24시간 일할 때가 많다.

외환딜러들은 스스로 '3D(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업종 종사자'라고 푸념한다.

외환딜러는 철저히 성과로 평가받는다. 성과가 좋을 땐 억대 연봉을 받지만 성과가 나쁘면 상황이 180도 바뀐다. 연봉이 깎이는 것은 물론이고 자리마저 위협받기 일쑤다. 국내 외환딜러 수는 대략 200명 안팎이다. 은행 간 거래를 전담하는 딜러가 60여명,기업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딜러가 130~140명 정도다.

요즘 외환딜러들은 '퇴출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한 해가 마무리되고 있지만 올해 수익이 변변찮기 때문이다. 딜러들 사이에선 기존 외환딜러의 10~20%가량이 교체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한 외환딜러는 "환율이 오르든 내리든 한 방향으로 크게 움직여줘야 수익을 낼 수 있는데 올해는 환율이 들쭉날쭉하게 움직이면서 수익은커녕 손해를 본 딜러가 많다"며 "수익이 나쁜 딜러 중 일부는 회사를 관두거나 다른 부서로 배치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