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닛산 사장으로 부임한 카를로스 곤은 3년 만에 사상 최대 이익을 올리며 1조4000억엔의 부채를 모두 갚았다. 이른바 '충격과 공포 경영'의 결과였다. 전체 자산의 85%를 매각하고 전체 직원의 14%인 2만1000명을 해고했다. 하지만 2006년 곤 사장은 공포 경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인재들이 회사를 떠났고 조직은 수동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2008년.LG실트론은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추석 즈음엔 공장 전체를 중지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언론에서는 구조조정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직원들은 술렁였다. 이즈음 직원들의 가정에 배달된 사장 명의의 장문의 편지."절대로 구조조정은 없으니 안심하십시오.오히려 지금의 위기를 기회 삼아 앞으로 전진합시다. "

《고객이 생각하지 못한 가치를 제안하라》는 딱딱한 제목과는 달리 LG의 '야사'에 가깝다. 저자는 닛산과 경영 방식을 비교하면서 글로벌 LG의 성공 비결은 '기다리는 경영'이라고 강조한다. "어려울 때 사람 내보내지 마라"는 구본무 회장의 말처럼 인재 경영이 오늘의 LG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보스턴컨설팅그룹과 비즈니스위크는 깜짝 놀랄 뉴스를 내놨다. LG전자를 세계 혁신기업 7위로 꼽으면서 삼성전자를 11위에,현대자동차를 22위에 자리매긴 것.국내시장에선 별로 특별할 것 없는 '2등 기업'이란 이미지가 강했지만,세계시장에선 오히려 오랜 기간에 걸쳐 쌓은 경영 철학과 비전을 알아봤던 것이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구자경 회장이 영동고객센터에서 고객에게 한마디 듣고 만들었다는 세탁기와 냉장고의 다리,미국 냉장고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내놓은 양문형 냉장고의 대박 사연 등은 오히려 재미가 덜하다.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오른 회사치고 그 정도 에피소드는 넘쳐날 터.하지만 창업 초기부터 사람을 기다리고 멀리 내다보는 경영을 해왔다는 LG의 DNA는 새삼 LG라는 기업을 다시 보게 한다. 1930년대 진주에 '구인회 상점'을 연 창업 회장이 1년 만에 쌀 100가마니에 해당하는 엄청난 손실을 입자 아버지가 땅문서를 내주며 했다는 한마디."인회야,초반에 잘 안 된다고 주저앉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 무슨 일이든 10년은 해봐야 되든 안 되든 결판이 나지 않겠느냐."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