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고가 미술품 구입 붐을 보면서 '아트테크 시대'가 본격화됐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창조와 상상력이 투자자산이 되는 시대란 얘기죠.미술 시장도 지난 3~4년간 조정을 거쳐 회복 국면에 들어선 게 분명합니다. 투명한 가격과 공정한 거래시스템 등 비즈니스 원칙만 잘 지켜지면 시장은 확대될 것입니다. "

미술품 경매회사 K옥션의 새 수장인 조정열 대표(44)는 오는 8일 첫 여름 경매를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미술계와 무관한 다국적 기업 출신인 그는 일반 컬렉터들이 미술품을 쉽게 구입하고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 업계 최강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다국적 기업에서 22년간 일하면서 배운 게 빠른 시일 내 영업 성과를 올리는 일입니다. 2~3년 안에 K옥션을 국내 최대의 미술품 경매회사로 키우겠습니다. "

조 대표는 이화여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20여년간 한국 유니레버와 한국 로레알,세계적 제약회사인 미국 머크의 아시아 · 태평양 지역 전략마케팅 상무,한국 피자헛 상무 등 다국적 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마케팅 · 영업 전문가. 직접 사 본 미술품은 딱 한 점이고,온라인 경매에도 대표 취임 후 처음 참여해 봤다.

"4년 전 갤러리 현대에서 황규백 씨의 소품을 구입한 게 미술과의 첫 만남입니다. 그림이 사람의 마음을 환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걸 그때 느꼈지요. 미술은 생소한 분야지만 생활용품에서 의약품,음식 등으로 전혀 성격이 다른 제품들을 판매했던 경험에 비춰 보면 못할 것도 없지요. 오히려 대기업에서 배운 마케팅 기법을 적용하면 미술 시장의 파이를 키울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

새 환경에 대한 그의 적응은 빠르다. 취임한 지 두 달 동안 벌써 온라인 경매(낙찰률 83%)와 홍콩 경매(낙찰률 76%)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작품 소싱과 가격 산정이 가장 어렵더군요. 최근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니까 좋은 작품을 더 비싼 값에 팔려는 컬렉터들이 경매에 출품하는 것을 꺼리더군요. 그래도 여름 경매에 1억원 이상 고가 작품을 14점이나 모았어요. "

그는 미술 시장에 대해 조심스럽게 낙관했다.

"미술품 경매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려면 누구나 자기 그림을 쉽게 팔고,고객이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국내 경매 역사는 짧지만 이런 비전과 전략을 향해 나아가면 시장도 좋아질 겁니다. "

그는 취임 당시 미술품 및 경매를 다각화하고 신규 사업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케팅 전문가가 생각하는 경매다각화와 신규 사업은 무엇일까.

"경매에서 팔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합니다. 크리스티는 한 해 450개 경매를 진행해요. 분야도 80여개로 나뉘어져 있지요. 시계,보석,와인 등 고급스럽고 소장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경매하는 게 꿈입니다. "

이를 위해 그가 세운 아트비즈니스 기준은 네 가지라고 했다. 첫 번째,컬렉터가 상품과 예술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지닌 미술품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컨설팅해 주는 것이고,두 번째는 컬렉터에게 미술품이 전략적인 가치투자 수단이라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미술 시장 정보의 변화를 읽어내야 하고,마지막에는 모든 사람에게 사회적인 가치를 줄 수 있는 기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