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남자한테 참 좋은데…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한 중소기업 경영인이 TV광고에 출연해 내뱉은 이 대사는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유행어가 됐다. 억센 부산사투리로 "(제품 효능을) 어떻게 표현할 '방뻐비' 없네"라며 고뇌하는 이 사람은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그의 어색한 연기에 "중독성이 있다"며 네티즌들이 동영상을 여기저기 퍼나르자 매출이 20% 상승했다. 제작비가 2000만원에 불과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성과다.

어딘가 촌스럽고 뭔가 어설픈 'B급 광고'들이 잇달아 대박을 터뜨리면서 주목받고 있다. 사실 B급 광고는 대기업처럼 광고 제작에 수억원을 투자할 수 없는 중소기업들의 눈물겨운 저예산 작품이다. 하지만 인터넷 키치(조악한 것을 즐기는) 문화 등에 힘입어 예상치 못했던 '고효율'을 내기도 한다.

◆천호산수유 · 장수돌침대의 신화

B급 광고의 대표적인 유형은 천호식품처럼 사장이 직접 출연하는 것이다. "별이 다섯개!"로 잘 알려진 장수돌침대도 성공사례로 꼽힌다.

최창환 장수산업 회장은 1990년대 후반 "딸을 시집보내는 심정으로 만들었습니다"라며 점잖게 자사 광고에 출연한 적이 있다. 하지만 큰맘먹고 5000만원을 들인 광고가 아무 반응이 없자 작심하고 촌스럽게 만들어 보기로 생각을 바꿨다. 필름 대신 캠코더용 테이프를 썼고 세트장 대신 사무실에서 촬영했다. '별이 다섯개'라는 광고 문구도 최 회장이 만들었다. 머리에 붙인 별 모양 색종이도 문구점에서 직접 산 것이다.

300만원으로 제작한 새 광고의 힘은 대단했다. 처음 전파를 탄 2000년부터 2005년까지 매출신장률이 30%를 넘었다. 지금은 연 매출 400억원,건강침대시장 점유율 25%를 달성한 중견기업이 됐다. 최 회장은 "나는 촬영감독이 아니라 경영자이기 때문에 멋진 화면보다 소비자에게 제품을 각인시키는 게 더 중요했다"며 "내 얼굴이 나오는 건 쑥스럽지 않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자기암시의 계기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최대한 쉽게 전달하려다 보니…"

"온몸이 후끈후끈한 이 열(熱)! 열! 열!" "팔뚝! 배! 허벅지! 살이 쭉쭉 빠지는 놀라운 효과." B급 광고들의 격전지는 케이블TV다. 믹서기,전기장판,건강식품 등의 홈쇼핑 광고(인포머셜)에는 약간 방정맞다 싶을 만큼 호들갑스러운 고유의 코드가 있다. 특대(特大) 세트를 한상 차려놓고 현란하게 비추는 동네 족발집 광고에서는 '주문전화가 꼭 많이 와야 할 텐데'라는 간절함마저 묻어난다.

이런 특유의 스타일에 대해 박승범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광고심의팀장은 "대기업은 이미지 위주의 광고를 많이 하지만 케이블을 주로 활용하는 중소기업과 홈쇼핑은 짧은 시간에 되도록 많은 메시지를 쉽게 전달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채널을 계속 돌리는 시청자들을 붙잡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너무 직설적으로 표현하다 보니 웃지 못할 상황도 많다. 건강식품 광고에서 의학적 효능을 표현할 수 없는데도 일부 영세업체는 수위 조절을 잘못해 수정에 재수정을 거듭하기도 한다.

◆광고시장의 당당한 '2부 리그'

광고기법이나 화질이 조금 촌스러울진 몰라도 이들은 광고시장에서 하나의 시장을 탄탄히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광고 · 방송업계의 설명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식당,안경점,대리운전 등 동네 광고가 많은 지역별 케이블방송사(SO)의 지난해 광고매출은 1조8045억원에 달했다. 또 케이블 방송채널(PP)은 3조3003억원의 광고수익을 올렸다.

대기업의 광고제작비는 모델료를 빼고도 편당 최소 1억~2억원 안팎이지만 인포머셜은 디지털장비로 찍으면 3000만원,필름으로 촬영 시 7000만원 정도가 든다. 한 케이블방송사 임원은 "인포머셜은 비용 대비 효율이 높은 시장"이라며 "보기엔 촌스러워도 방송이 한번 나갈 때마다 문의전화가 밀려드는 걸 보면 우습게 생각지는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근한 이노션 브랜드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은 "B급 광고에는 유머 코드나 사장의 진솔한 모습 등을 담은 경우가 많다"며 "시청자가 좋아할 만한 요소를 잘 맞춘다면 제작비에 관계없이 대박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