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⑯]수익률 상위 1% '펀드 대박'의 비결-황성택
'상위 1%'라는 말이 언젠가부터 사회의 특별계층을 얘기하는 용어로 통하기 시작했다.

부(富)에 있어서의 상위 1%는 거액의 자산가를 일컫는 말이 됐다. 성적의 상위 1%는 서울대학교에 갈만한 수준이라는 의미이며, 손님 중에 상위 1%는 상위층 고객(VIP)보다 한 수위인 최상위층(VVIP)와도 같은 뜻으로 해석될 정도다.

그렇다면 수익률 상위 1%인 국내주식형펀드는 어떤 특별한 펀드일까? 바로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칭기스칸주식형펀드'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이 펀드의 최근 1년간 수익률(A클래스 기준)은 73.71%로 상위 1%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주식형펀드의 평균수익률인 49.50%를 큰 폭으로 웃돌고 있다. 펀드 수탁고는 1195억원에 불과한 소규모 공모펀드지만, 높은 수익률로 순자산 규모는 2000억원에 달한다.

걸출한 성적을 내고 있는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역사는 의외로 짧다. 2008년 6월에 설립됐으니 1년6개월 남짓한 새내기 자산운용사다. 하지만 한번 더 들여다보면 내공이 깊은 회사임을 짐작할 수 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전신(前身)인 아이엠엠투자자문이 1998년에 설립됐으니 자문사까지 따지면 10년이 넘은 회사다. 자문사지만 위탁운용하고 있는 자산규모만도 2조원 이상이었다.

아주 특별한 수익률을 내고 있는 펀드를 이끌고 있는 주인공은 황성택 트러스톤자산운용 대표(43·사진)다. 그의 풍모는 자문사에서 잔뼈가 굵은 모습이 아니었다. 현란한 언변과 화려한 옷차림일 것이란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황 대표는 수줍음 많은 소년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황 대표는 트러스톤자산운용 지분 50%를 보유한 최대주주이자 대표이고 최고투자책임자(CIO)를 겸직하고 있다. 짧은 시간동안 '자산운용사 설립'과 '우수한 펀드성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셈이다.

하나증권(현 하나대투증권) 빌딩 10층인 황 대표의 사무실에서는 여의도 공원이 앞마당처럼 훤히 내려다 보였다. 투자의 길도 사무실 전망처럼 꿰뚫고 있기에 상위 1% 펀드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한국경제신문의 온라인미디어 <한경닷컴>은 지난 7일 황 대표에게 수익률 상위 1% 펀드의 투자비밀을 들어보았다.

◆팀 보다 훌륭한 선수는 없다…믿음을 바탕으로 꾸준한 수익추구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어떻게 버느냐가 중요합니다. 저는 대표이자 CIO(최고투자책임자)로서 감독일 뿐입니다.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 등이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면서 뛸수 있도록 팀을 꾸려가는 역할만 합니다."

기자가 높은 수익률의 비결을 묻자 황 대표는 '노하우(know-how)'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역할은 관리 감독에 지나지 않는다며 겸양(謙讓)의 자세를 보였다. 운동을 좋아한다는 황 대표는 펀드운용을 '축구'와 비교했다.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의 어록을 인용해 펀드운용을 설명했다.

"'팀 보다 훌륭한 선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한 말이죠. 저도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명문 축구클럽들이 한 두 명의 스타플레이어보다 팀워크나 색깔을 중요시 합니다. 저 또한 펀드운용에 있어서 팀워크와 색깔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트러스톤만의 투자스타일을 고집하고 유지하는 것이 전쟁터와 같은 자산운용업계에서 승리의 비결이라는 얘기다. 이를 유지하도록 선수들을 관리하는 것이 황 대표의 몫이란다.

"트러스톤의 투자철학이자 스타일은 크게 3가지예요. △믿음(trust)을 주면서 △느리게&꾸준하게(slow & steady) 운용하며 △장기적(longterm)인 판단에 근거를 두고 투자하는 겁니다. 회사명에도 있지만 운용사라면 투자자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을 주려면 느리지만 꾸준한 성과를 내야하겠죠. 이런 성과를 얻으려면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판단에 근거해 투자를 결정해야 합니다."

3가지 철학이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가 말하는 '장기적 판단'의 기준은 3년 이상이다. 이처럼 먼거리를 내다보고 투자하는 이유는 시장의 변동성이 예전보다 축소됐기 때문이다. 최근 시장은 역사적으로도 변동성이 줄었다는 것. 따라서 단기적인 모멘텀에 근거한 투자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는 어떤 기업들을 고르게 될까? 황 대표도 다른 고수들과 마찬가지로 '발상의 전환'으로 기업을 고르고 있었다.

"기업을 남다른 시각으로 봐야 합니다. 우량주도 중요하지만 특출난 유전자(DNA)를 지니고 있는 기업을 고르는 눈이 있어야죠. 다음으로는 '기업의 이익창출이 지속적으로 될 것인가' 여부입니다. 사업모델이 합리적이고 현금창출이 지속성으로 있어야겠죠. 1~2년 안에 히트상품을 만들어낼 기업보다는 시장점유율을 꾸준히 늘려가는 기업을 훨씬 선호합니다."

기업을 토끼와 거북이에 비교하자면 '거북이'가 낫다는 것. 기업의 이익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가시성' 보다는 '지속 가능성'에 초점을 둔다는 얘기다. 지속성이 담보되야만 성장성도 기대할 수 있다고 황 대표는 역설했다. 대표적인 기업은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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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딥 없을 것…자동차·금융업종 '비중확대'

황 대표는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종목과 업종에 투자해 '펀드대박'을 일궈냈다. 1년만에 70% 이상의 수익을 돌려준 종목들을 들여다보니 올해 효자종목은 정보기술(IT)과 자동차 업종이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지난해말부터 IT 업종에 대한 '비중확대'에 나섰다. IT의 비중확대는 2004년 이후 4년 만이었다. 만성적인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는 IT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매력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한동안 IT업종에 대한 투자를 늘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난해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판단은 달라졌다.

"회사를 출범한 지 얼마되지 않아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로 '금융위기'가 닥쳤죠. 회사로서는 펀드자금이 모이지 않아 위기가 될 수도 있었지만, 투자에 있어서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시장점유율을 늘려갈수 있는 업종은 IT라는 판단에 삼성전자, 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를 집중 매수했습니다."

비록 최근들어 IT의 비중을 줄이고 있지만, 시장점유율 확대를 기업의 경쟁력으로 여긴 황 대표의 분석이 적중한 사례였다. 그가 최근 몇년간 꾸준히 비중확대에 나선 업종은 '자동차'과 '금융'이다. 자동차 업종은 적극적으로 금융업종은 조심스럽게 투자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이라는 말이 있죠. 이 말에 가장 어울리는 업종이 자동차입니다.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이겠지요. 금융업종에서는 은행과 보험이 주요 관찰 대상입니다. 내년에는 언제가 되건 '금리인상'이라는 호재가 대기하고 있죠. 이 같은 호재는 이익개선으로 이어지리라고 봅니다."

그는 내년에도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칭기스칸 펀드'의 현재 주식비중은 95% 수준. 이 같은 수준을 내년에도 유지한다는 게 황 대표의 생각이다. 시장에 대한 전망이 긍정적인 탓이다.

"앞으로 3년 동안은 더블딥(경기 이중하강현상)은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유는 금융위기의 근본적인 문제가 미국의 가계소비 문제에서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내년이면 해결될 것 같습니다. 미국 가계 소비회복세가 예상보다 느리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당연한 현상입니다. 돈이 생기면 빚을 갚지 누가 소비를 하겠습니까? 소비가 점진적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지표는 가계의 재무상태가 건전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가계 소비는 2010년 2분기 이후에 회복된다는 전망이다. 미국 소비가 늘어나면 세계적으로 경기회복이 본격화될 개연성이 충분하다는 논리도 덧붙였다. 국내 증시는 최근 조정을 받고 있지만 1700선은 무난히 넘길 것으로 예측했다. '강한조정'인 동시에 '건강한 조정'이라는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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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운용 진출·中 사업 본격화 예정…"금융수출 꿈꾼다"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그에게 지난 1년동안 희노애락이 무엇인지 물었다. 자문사에서 자산운용사로의 변신이 쉽지는 않았을터다. 자문사시절 국민연금, 우정사업본부 등 굵직한 공적자금과 사모자금들을 끌어모으면서 승승장구했으니 말이다.

"'쉽지 않았다'는 말이 가장 적절하겠네요. 그래도 속은 시원합니다." 껄껄껄 웃어보이는 황 대표. 수줍어하던 첫 인상은 자취를 감췄다. 시원한 너털웃음이었다.

"공적자금을 제아무리 훌륭하게 운용해도 어디에 내세울 곳이 없었어요. '어떻게 운용했다'나 '수익률이 얼마다' 등의 얘기를 할 수 없었으니까요. 이제는 공모펀드니까 운용철학이건 수익률이건 마음껏 자랑할 수 있죠. 물론 이런 '자유'를 얻은 만큼 '책임'도 커졌습니다. 컴플라이언스나 리스크 관리 부문에서죠. 자문사만 꾸려오다보니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새로 뽑은 직원들보다 자문사부터 함께한 직원들이 많다보니 같이 헤맸던 것 같아요."

황 대표는 정기적인 교육은 물론 회사 자체의 프로그램도 만들어 직원들과 잠재적인 리스크 관리까지 나섰다. 지금은 직원들과 책을 지정해 읽고 토론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최근에는 펀드매니저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앤서니 볼턴의 책을 읽고 직원들과 토론했다.

"고생은 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자산운용사를 설립할 때 주위에서 '왜 그런 힘든 일을 하느냐'고 만류했었죠. 1998년 자문사를 차릴 당시 초심을 가지면 된다고 생각했죠. 10년 동안 초심을 가지면서 운좋게 한 길을 걸어 성공했으니 앞으로도 마찬가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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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대표는 지금도 운발(?)을 받고 있다. 자식같은 칭기스칸펀드가 활약하면서 '낭중지추(囊中之錐)'의 면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초 300억원도 안됐던 이 펀드의 수탁고가 최근 1000억원을 넘었으니 말이다. 증시회복으로 국내주식형펀드에서 환매가 몰렸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칭기스칸펀드에는 지금도 개인고객을 중심으로 돈이 꾸준히 몰리고 있다. 여세를 몰아 새로운 사업도 펼칠 예정이다.

"지금 저희(트러스톤자산운용)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는 국내주식형펀드예요. 이를 토대로 사업을 확장할 겁니다. 채권운용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일임운용부터 차근차근 해나갈 계획입니다. 중국에 있는 사무소도 제대로된 지점으로 키우려고 합니다. 중국인들이 우리나라에 투자하도록 유도할 예정입니다. 금융을 수출하는 것이죠."

황 대표는 '금융수출'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해외자금을 받아서 국내투자를 유도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이러한 자신감 역시도 믿음에서 비롯됐다는 게 황 대표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기업에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인만큼 우리 주식시장과 자산운용시장도 크고 강한 시장이 될 수 있으니까요. 펀드매니저로서 좋은 기업들이 많아서 고를 수 있다는 것은 고마움이고 행복입니다."

투자자들에게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한국을 믿고, 내가 다니는 기업을 믿고 투자하세요. 공포와 탐욕을 거스르는 지혜와 용기를 가지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글=한경닷컴 김하나 기자 hana@hankyung.com
사진=한경닷컴 양지웅 기자 yang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