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은 모든 생물에게 삶과 죽음을 절대적으로 명령하지 않는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생물들에도 한두 번의 기회는 있다. 단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생존에 필요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시간,이것이 삶을 약속받을 수 있는 변이의 조건이다. 대륙제관은 그렇게 살아남았다.

2006년 2월24일.충남 아산의 대륙제관 공장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불길은 부탄가스통을 생산하는 공장 한 동을 모조리 태우고 옆 건물로 옮겨붙었다. 100만개의 부탄가스통 창고였다. 곧 펑! 펑! 소리를 내며 가스통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화재가 나기 전까지 대륙제관은 독보적인 금속캔 생산업체였다. 휴대용 부탄가스통과 윤활유 · 식용유 · 페인트 등을 담는 큰 통을 주로 생산해 연간 9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전 세계에서 팔리는 휴대용 부탄가스통 셋 중 하나는 이 회사가 생산했다. 하지만 당장 물량을 공급할 수 없게 되자 직원들은 눈물을 머금고 거래처에 전화해 경쟁업체 연락처를 알려줘야 했다. 별도리가 없었다. 화재로 인한 손실은 공장 설립비용 200억원과 생산손실까지 모두 600억원가량에 달했다.

하지만 대륙제관은 주저앉지 않았다. 박봉준 대륙제관 사장은 "부탄가스통이 터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연구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해서 작년 7월 출시된 제품이 폭발하지 않는 휴대용 부탄가스통 '맥스CRV'다. 열을 받아 용기 내 압력이 올라가면 접혀 있던 상단 부분이 펼쳐지면서 작은 구멍으로 가스가 먼저 새어나와 폭발하지 않는 원리다. 일반 제품보다는 개당 50원 정도 비싸지만 잘 팔린다. 올해 미국에 200만개가량 수출이 예정돼 있고 일본 · 호주 등과의 계약도 앞두고 있다.

박 대표는 "2006년 목표였던 1000억원 매출 돌파를 작년에 실현할 수 있었다"며 "올해는 1350억원 매출을 달성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