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파동'의 여파로 이명박 정부의 경제 개혁정책들이 표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 완화,기업환경 개선 등 핵심 과제들에 '일단 정지' 사인이 내려지면서 추진력이 급속도로 약화되고 있는 것.특히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하루가 다르게 급락하고 있는 반면 야당과 시민단체 등 '이명박식 개혁'을 못마땅해 하는 세력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어 개혁정책이 장기간 표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쇠고기 함정'에 빠진 이명박 정부가 '경제 살리기'와 '비즈니스 프렌들리 개혁'마저 제대로 추진하지 못할 경우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경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공기업 개혁 발표 연기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실용주의 경제 개혁' 노선을 내세워 압승을 거뒀지만 쇠고기 파동으로 국정 추진력이 떨어지면서 이를 실현할 정책들을 모두 보류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공기업 개혁안 발표다.

참여정부 5년간 공공부문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비대해졌고 방만한 경영도 심화됐다.

때문에 공기업 개혁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국민들 사이에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50~60곳을 민영화하고 나머지 기업들도 통폐합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는 것으로 정부 초안도 이미 그려져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발표를 못 하고 있다.

당초 정부는 공기업 구조개편 방안을 5월 말께 발표한 뒤 이달 중순쯤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심의 의결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최근 발표 시기를 6월 말로 연기했다.

한나라당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공기업 민영화 발표 시기를 늦춰 달라고 요청한 데 따라 7월 이후로 미뤄질 공산이 크다.

민영화 발표를 연기한 것은 공기업 노동조합 등 이해당사자들의 저항을 정면 돌파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민영화 괴담'도 쇠고기 반대 여론 속에서 거부감 없이 유포되면서 또 다른 불씨가 될 가능성을 키워가고 있다.

◆규제완화 줄줄이 표류

부동산 규제완화를 통해 거래의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약속도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등 부담 완화와 재개발·재건축 용적률 규제 완화 등이 대표적인 정책들이지만 '강부자 내각' 논란에다 쇠고기 정국 영향으로 "말도 꺼내기 힘든 분위기"(청와대 관계자)가 돼버려서다.

또 비정규직 채용 기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오는 7월부터 중규모 기업(종업원 수 100~299명)으로 확대 적용될 예정인 비정규직보호법을 개정하는 문제를 검토 중이지만 이 역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6월 중 발표하기로 한 금산분리 완화,금융지주회사 제도 개선 등도 발표 시기를 하반기나 내년으로 연기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경제살리기를 위한 정책이지만 '재벌특혜'라고 몰아붙일까봐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특히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한도를 4%에서 10% 정도로 상향하는 방안과 증권 보험 지주회사에 제조업 자회사 소유를 허용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시민단체와 일부 학계가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3월 말 대통령 업무 보고 이후 7대 중점과제를 선정하고 이들 과제에 대한 세부방안을 6월까지 발표하기로 했다"며 "하지만 모든 발표를 연기하거나 이 중 크게 문제되지 않는 금융규제 개혁,온라인 원스톱 민원시스템 등만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재형/차기현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