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라운드가 자신의 마지막 라운드라 여기고 골프를 쳐 본 사람이 있을까.용평CC클럽챔피언을 지낸홍영재 산부인과 원장(62)은 4년전 암 진단을 받고 ‘생애 최후의 라운드’를 경험했다.


"2001년 10월에 친구들과 강화도로 황복을 먹으러 갔다가 머리가 아프고 뻐근해서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습니다.


대장암과 신장암 진단을 받았지요.


두 암이 전이됐다면 2개월을 살지 못한다더군요.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5일 뒤 수술날짜가 잡혔습니다.


수술 전날 친구들과 라운드가 예정돼 있었지요.


취소하려고 하다가 '이게 나의 마지막 라운드'라고 생각하고 그냥 치자고 했습니다."


오전 11시30분 은화삼CC에서 티오프했다.


홍 원장이나 친구들은 처음에 아무 말을 안했다고 한다.


그래도 내기는 하자고 해서 1타당 만원의 내기가 시작됐다.


"그날 따라 샷이 안되는거에요.


얼마나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골프는 잡념이 없어야 하지만 그게 안되는거에요.


내기를 하면 항상 승자였지만 그날은 17번홀까지 50만원을 넘게 잃었습니다."


마지막 18번홀 세컨드샷 지점에 다다랐다.


3명의 동반자들이 모두 온그린에 실패한 상태에서 홍 원장은 150야드를 남겨두고 7번아이언으로 '자신의 생애 마지막 샷'을 날렸다.


볼은 멋지게 그린을 향해 날아가 떨어진 뒤 홀을 향해 구르기 시작했다.


이글이 될 것 같더니 홀 바로 옆에 멈춰섰다.


"멀리서 보니 홀 30∼40cm 옆에 붙은 거 같더군요.


순간 여기서 버디를 하면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버디를 못하면 죽지만 버디를 하면 살 것이라는 이상한 느낌말이지요.


반드시 넣고 살아야겠다는 의지도 솟아나더군요."


그러나 그린에 가보니 볼은 홀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최소한 4m는 넘어보였다.


"톡 치면 들어갈 정도로 붙은 줄 알았더니 거리도 만만치 않고 어려운 슬라이스 라인에 걸린 거에요.


괜한 생각을 했나보다하고 후회했지요.


그래도 마지막 홀을 버디로 마무리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마지막 퍼팅에 온 심혈을 기울였다.


퍼터를 떠난 볼은 슬라이스 라인을 타고 그대로 홀에 빨려들어갔다.


홍 원장은 하늘을 보고 그대로 그린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확고히 가졌다.


"퍼팅은 결국 집중력입니다.


한 순간의 집중이 퍼팅을 성공시킵니다.


의사들은 수술도중 피가 튀는 상황에서 1초를 다투기 때문에 집중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홍 원장은 다음 날 유서를 써놓은 채 수술을 했고 정말 기적처럼 암이 전이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그가 골프에 입문한 것은 개인병원을 개업하고 난 뒤 과도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오랫동안 테니스를 해온 홍 원장은 입문 7개월여 만에 첫 싱글스코어를 낼 정도로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그는 용평CC 코스레코드(4언더파 68타)도 보유하고 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