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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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에서 상장지수펀드(ETF)를 투자하는 사람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국내 최대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의 경우 고객들이 DC형 퇴직연금 및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를 통해 투자한 ETF 잔고가 2019년말에는 1013억원이었으나, 2020년 말에는 4834억원으로 4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2021년 1월말 기준으로는 6280억원에 이릅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퇴직연금 계좌를 활용한 ETF 투자가 늘어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수수료가 일반 펀드보다 저렴하고, 주식처럼 자유롭게 거래되므로 급격한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시장대표지수 ETF가 대부분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다양한 ETF가 상장돼 분산 투자가 더 손쉬워졌다는 점도 매력으로 꼽힙니다.

그러나 퇴직연금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주의해야 하는 점들도 있습니다. 첫째, ‘투자 가능한 ETF에 제한이 있다’는 점입니다. 퇴직연금 계좌에서는 레버리지 및 인버스 ETF는 투자할 수 없습니다. 레버리지 ETF는 기초지수의 변동 폭보다 몇 배의 수익이나 손실을 거두도록 설계된 상품을 말합니다. 인버스 ETF는 기초지수의 가격이 오르면 수익률이 하락하고, 반대로 내리면 수익률이 상승하도록 설계된 ETF입니다. 두 ETF 모두 빠르게 단기 매매를 하는 투자자들이 많이 활용하는 상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 투자가 필수인 퇴직연금 계좌에서는 매매를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파생상품 위험평가액 비중이 높은 ETF도 투자가 불가능합니다. ETF는 안에 주식, 채권 등의 현물을 실제로 담아서 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물 등의 파생상품 위주로 투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파생상품의 위험평가액이 40%를 초과하면 퇴직연금 계좌에서는 매매가 불가능합니다. 달러 등의 통화 선물에 투자하는 ETF나, 금·은 및 원자재에 투자하는 ETF가 주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둘째, ‘자동매수 시스템이 없다’는 점입니다. 퇴직연금 계좌에서 일반적인 펀드를 매수할 때는 사전에 어떤 펀드에 얼마만큼의 비율로 부담금을 투자할 것인지 정할 수 있습니다. 월 부담금이 납입될 때 별도의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미리 설정한 펀드에 투자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ETF의 경우 이렇게 시스템으로 설정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월 부담금이 납입되면 투자자가 스스로 시스템에서 ETF를 매수해야 합니다. 매수 금액만 지정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의 가격으로 매수할 것인지 다 정해서 주식처럼 매매해야 한다는 점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매도할 때도 마찬가지로 얼마의 가격으로 팔 것인지 지정해야만 합니다.

셋째, ‘매매 시 위험자산 투자한도에 주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퇴직연금 계좌는 주식형 및 주식 비중이 40%가 넘는 혼합형 펀드의 투자비율을 전체 자산의 70% 이내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ETF도 펀드이므로 동일한 기준을 적용받게 됩니다. 처음 자산배분을 할 때는 이 기준을 맞추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가지고 있는 현금의 70%까지만 주식형 ETF를 사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ETF에서 수익이 발생한 상태에서 매매를 할 때는 보다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홍길동씨는 1000만원을 IRP계좌에 입금하고 700만원으로 주식형 ETF 700주를 샀습니다. 남은 300만원은 현금으로 보유했습니다. 이후 주가가 올라서 ETF의 평가금액이 1000만원이 되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 시점에 홍길동씨는 이익실현을 하기로 마음 먹어서 가지고 있는 주식형 ETF를 전부 팔았습니다. 얼마 후 마음이 바뀌어 팔았던 ETF 700주를 다시 사려고 합니다. 다행히 ETF의 가격은 팔았던 시점과 같습니다. 이 매매가 가능할까요? 답은 ‘불가능 하다’입니다.

이는 퇴직연금의 위험자산 투자한도 때문입니다. 홍길동씨가 ETF를 파는 시점에 ETF의 평가금액은 1000만원이었으며, 이는 전체 자산의 약 77% (=1000만원/1300만원) 수준입니다. 그대로 보유하고 있었다면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매도 후 다시 살 때는 또 한번 위험자산 투자한도를 따지게 됩니다. 따라서 주식형 ETF를 살 수 있는 금액은 전체 자산 1300만원의 70%인 910만원까지입니다. 남은 90만원은 현금으로 보유하거나 채권형 펀드 등 위험하지 않은 자산을 매수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렇듯 퇴직연금 계좌에서 ETF를 매매할 때는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칫 하다가는 매매를 안 하느니 못한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윤치선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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