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초겨울 편지, 김용택
[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초겨울 편지, 김용택
초겨울 편지

김용택

앞산에
고운 잎
다 졌답니다
빈 산을 그리며
저 강에
흰눈
내리겠지요

눈 내리기 전에
한번 보고 싶습니다

[태헌의 한역]
初冬書信(초동서신)

前山佳葉落紛紛(전산가엽락분분)
雪懷空山將下江(설회공산장하강)
白雪飛前願逢君(백설비전원봉군)

[주석]
* 初冬(초동) : 초겨울. / 書信(서신) : 편지.
前山(전산) : 앞산. / 佳葉(가엽) : 아름다운 잎, 고운 잎. / 落紛紛(낙분분) : 분분하게 떨어지다. 원시의 ‘다 지다’를 다소 의역한 표현이다.
雪(설) : 눈. / 懷(회) : ~을 그리워하다. / 空山(공산) : 빈 산. / 將(장) : 장차. / 下江(하강) : 강에 내리다.
白雪(백설) : 흰 눈. / 飛前(비전) : 날기 전에, 내리기 전에. / 願(원) : ~을 원하다, ~을 하고 싶다. / 逢君(봉군) : 그대를 만나다.

[한역의 직역]
초겨울 편지

앞산에 고운 잎 분분히 졌습니다
눈이 빈 산 그리며 장차 강에 내리겠죠
흰 눈 날리기 전에 그대 보고 싶습니다

[한역 노트]
이 시는 한 마디로 말해 시로 쓴 편지이다. 그런데 시로 보기에도 짧지만 편지로 보기에는 더더욱 짧다. 그러나 글이 짧아도 엽서에 적을 내용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제목이 “초겨울 엽서”가 아니라 “초겨울 편지”가 되었을 것이다. 또 편지도 그냥 편지가 아니라 일종의 연애편지이므로, 연애편지 치고는 확실히 “짧은 편지”라고 할 수 있겠다.

역자는 “짧은 편지”라고 하면 언제나 떠오르는 사춘기 시절의 추억이 하나 있다. 정확하게는 역자가 기억하고 있는 한 고향 친구의 에피소드이다.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했지만 어려서부터 유난히 장난기가 심했던 그 친구가, 같은 중학교 같은 학년이었지만 출신 초등학교가 달랐던 어느 여학생에게 방학 기간에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편지 전문이 겨우 12자였다. “너 잘 있니? 나 잘 있어. 그럼 안녕!” 이렇게 편지를 보냈노라고 그 친구가 역자에게 자랑하지 않았다면 역자는 글자 수며 내용을 절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부끄러움이 많아 여학생들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던 역자에 비하면, 상당히 어른스럽고 대범하여 역자를 이따금 주눅들게 하였던 그 친구는 그 무렵에 당연히(?) 그 어떤 답장도 받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편지 내용이 설령 다른 사람들이 이미 사용한 적이 있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역자는 지금까지 살면서 이보다 더 짧은 (연애)편지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오늘 소개하는 이 시는, 그 편지에 비하면 역자에게는 결코 “짧은 편지”가 아니다.

이 시로 쓴 편지는 그 성격을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데이트 신청서’라고 할 수 있다. 원시 마지막 행의 “한번 보고 싶습니다”라는 말이 편지의 그러한 성격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시인이 이 데이트 신청서에서 핵심 소재로 삼은 것은 “눈”이다. 눈을 연애와 결부시켜 노래한 시는 하도 많아 그 예를 들 필요조차 없을 정도지만, 적어도 이 시의 8행에서 언급된 눈은 연애의 촉매제로 쓰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느 연인들처럼 눈이 오는 날이 아니라 눈이 내리기 전에 보자고 한 것은, 본격적인 겨울이 되기 전에 최대한 빨리 보자는 뜻으로 읽히므로, 1차적으로 이 시에는 시적 화자의 조바심이나 서두름이 어느 정도 투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눈이 상대방이 오가는 길을 더디게 하고 육신을 힘들게 할 것임을 알아, ‘눈이 내리기 전’으로 시기를 특정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눈이 내리기 전’은 단순히 조바심이나 서두름의 표현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뜻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배려와 존중만큼 상대를 대접받는 느낌이 들게 하는 에티켓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이 시로 쓴 편지는 연인들 사이에서 흔한 통상적인 데이트 신청이 아니라, 어려운 상대에게 보내는 정중한 데이트 신청일 가능성이 크다.

나뭇잎이 다 지고 나서 눈이 산하를 찾으면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다. 그 시린 겨울이 밀려오기 전에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 따스한 겨울이 되도록 하고 싶다는 것이 시인의 뜻일 듯하다. 또 눈이 내리고 만상이 얼어붙는 때가 되면 이미 늦다고 보는 것 역시 시인의 뜻일 듯하다. 사철의 겨울이든 인생의 겨울이든 그 겨울을 따스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을 넘어 하나의 축복이 아닐까 싶다. 시적 화자는 적어도 그렇게 축복을 꿈꾸고 있었을 법하다.

역자는 2연 9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3구의 칠언고시로 한역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원시의 몇몇 시어는 한역을 누락하였고, 또 몇몇 시어는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보충하였다. 한역시는 1구와 3구에 압운하였으므로 압운자는 ‘紛(분)’과 ‘君(군)’이 된다.

2021. 11. 30.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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