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은 1년에 한 번 이슬람력으로 아홉째 달인 라마단달(月)에 금식을 한다. 금식은 이슬람 신앙의 5대 기둥 중 하나이며 금식월에는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음식과 물, 성관계가 금지된다. 이슬람력은 서력보다 열흘 이상 짧기 때문에 해마다 라마단 금식월은 그만큼 당겨진다. 올해는 4월 24일부터이다.
[인도네시아 톡톡] 자카르타의 라마단 풍경, 그리고 단상
인도네시아에서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금식월(月)이던 어느 날 저녁식사를 하러 쇼핑몰 푸드코트를 찾았다. 그 날도 푸드코트는 하루의 금식을 마무리하는 식사를 하기 위해 온 사람들로 붐볐다. 일몰 기도 시간이 되자 다들 감사의 기도와 함께 물과 가벼운 음식으로 오랜 금식 끝에 맞는 첫 식사를 시작했다.

내 앞 자리에는 할아버지부터 손녀까지 삼대가 모인 가족이 식사를 막 시작하고 있었고 그 바로 옆에는 푸드코트 여직원이 유니폼을 입고 서 있다. 아직 오지 않은 손님들을 위해 예약석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모두 물뚜껑을 열어 목을 축이고, 숟가락을 들어 음식을 먹기 시작했지만 그 직원은 서 있어야 했다.

그 직원이 맡은 일 때문에 금식시간 종료를 알리는 소리에도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서 있는 것을 보고, 내 앞자리에 있던 중년 여성이 약간의 물과 음식을 권했다. 그러자 딸인 것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작은 접시에 담긴 달콤한 케잌과 과자를 그 직원에게 건넸다. 이 직원은 잠시 머뭇거리며 망설였지만 이내 수줍게 웃으며 이들이 건네주는 물을 받아 마시고 과자를 작게 베어 물었다. 이전에 서로 알지 못했을 이 가족과 젊은 직원은 어느덧 금식을 마무리하는 음식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가족 같아 보였다. 아름답고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이 후에도 라마단 때가 되면 항상 이 장면이 떠오른다.

선지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라마단월에 금식을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금식을 하면 죄가 씻어진다고 한다. 하루를 금식할 때마다 까마귀가 태어나서 평생 날 수 있는 거리만큼 지옥불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먹고 마시고자 하는 욕구와 성적인 욕구는 삶의 기본적 욕구인데, 이런 욕구를 1년 중 일정한 기간 동안, 또 하루 중 일정한 시간 동안 절제하는 것이 라마단 금식이다. 금식을 하며 평소에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의 소중함을 생각하기도 하고, 또 주위 사람들의 결핍을 돌아보는 것도 금식의 의미 중 하나이다.

그냥 습관적으로 금식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눈이 무서워서 금식을 하는 사람도 있다. 누가 보지 않으면 음식을 먹는 이들도 많다. 그래도 많은 무슬림이 라마단 기간을 자신의 신앙을 갱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금식을 지킨다. 어린 아이들은 금식의 의무가 없지만 아침식사를 거르는 부분 금식을 하거나 어른들과 함께 전일 금식에 참여하며 뿌듯해 하기도 한다. 어른으로 인정받는 기분일 것이다. 한 달간 금식을 해야 하는 금식월이 다가오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막상 라마단이 시작되면 무슬림 친구들의 SNS는 ‘마르하반 야 라마단’(안녕, 라마단, 어서와 정도의 의미)이라는 기대의 메시지로, 라마단이 끝날 때에는 ‘잘가, 라마단 내년에 또 만나’ 하는 아쉬움을 담은 메시지로 넘친다. 이런 걸 보면 금식을 억지로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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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을 하면서 음식을 먹지 않으면 그 음식은 하늘에 쌓인다고 한다. 하지만 실상은 라마단 금식 기간에는 식품 소비량이 평소보다 많아지기도 한다. 이 기간 닭고기나 양고기 같은 식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당국의 중요한 숙제이다. 한 달 동안 하는 금식이 고행의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해가 진 후 가족과 친구, 또는 동료들과 금식을 마치는 식사(이프타르)를 하는 시간들은 오히려 축제와도 같다. 라마단 금식 기간 중 저녁식사를 괜찮은 식당에서 하려면 예약이 필수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금식을 마무리하며 무엇을 먹는 행위를 부까 뿌아사(buka puasa, open the fast)라고 하는데 함께 금식을 마치는 식사를 하는 행위를 일컫는 줄임말이 따로 있을 정도이다.(bukber, buka puasa bersama) 어디에서나 가족과 친구끼리, 또는 회사 동료끼리 금식을 마치는 식사를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 회사에서도 해마다 라마단 기간 중에는 하루를 정해 근사한 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금식 후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선지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금식을 마치는 식사를 제공하면 음식을 주는 사람도 금식을 한 것과 마찬가지의 보상이 있다고 한다. 하루 종일 허기진 후에는 대추야자나 달달한 음료, 간단한 스낵 같은 것들로 속을 달래는 음식을 먹는데, 일몰 기도를 드리러 가는 사원 앞이나 길 가에서 금식을 마치는 음식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라마단 금식은 배고픔과의 싸움일 뿐 아니라 피곤함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사무실에서 금식을 하는 여직원들은 점심시간에 탈의실에 자리를 깔고 누워 쉬거나 잠을 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허기가 지고 힘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피곤함이 더 큰 이유이다. 금식 때는 해가 뜬 이후에 아무 것도 먹을 수 없기 때문에 해가 뜨기 전에 사후르(sahur)라고 하는 식사를 한다. 사후르를 먹어야 하루의 금식을 견딜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한 식사이다. 자다가 일어나 뭘 먹고 마시는 것도 피곤한 일이지만 새벽같이 일어나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이 사후르를 준비하는 것은 아직은 대부분 여성들의 몫이다. 또, 라마단 기간에는 배고픔 끝에 저녁식사를 하게 되므로 평소보다 거한 특식을 준비할 때가 많다. 배고픈 상태에서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간식거리를 장만하는 것도 대부분 여성의 일이 된다. 라마단 때는 남성들도 피곤하지만 여성들은 더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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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인도네시아에서도 라마단은 매년 찾아오는 힘들기도 즐겁기도 한 그런 손님이다. 그런데 이번 라마단은 다른 해와는 많이 다를 것 같다.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인해 모여서 금식을 마치는 식사를 함께 하거나 사원에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행위를 가급적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사회적 제약도 연장되고 있고, 이미 많은 이슬람 단체에서 라마단 금식은 수행하되 모여서 하는 활동들은 최소화하라는 권고가 내려오고 있다. 코로나19와 맞서는 것이 성전(지하드)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인도네시아 무슬림은 라마단이 끝난 뒤 축제(이둘 피트리) 때 고향을 방문하여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무딕), 금식을 시작할 때나 금식 중에 고향을 방문하기도 하는데 이번 라마단에는 이것도 금지이다. 사원에서 함께 기도할 수도 없고, 가족과 친척, 친구, 동료와 함께 모여서 떠들썩하게 금식을 마치는 식사를 하지도 못하고, 고향에도 갈 수 없는 라마단이라니. 이번 라마단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조용히 참된 금식의 의미를 되새겨 보라는 권고들이 눈에 많이 띈다. 세계의 무슬림이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올해에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라마단을 보내야 하는 인도네시아 무슬림이다.

*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crosus@koreaexi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