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인도네시아의 이웃나라인 말레이시아 우먼파워 이야기이다. 말레이시아에서 공부를 하던 2011년 어느 날이다. 운전을 하면서 라디오를 듣는데 재미있는 주제로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남학생의 대학진학률이 여학생보다 많이 떨어져서 남학생이 대학을 많이 가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을 뛰어넘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런 현상이 더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2018년 영국 사설기관(UCAS)이 조사하여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지에 실린 자료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대학 등록자 중 64%는 여성이다. 대학신입생들 중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2:1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말레이시아의 우먼파워와 관련하여 경험한 에피소드는 너무 많다.

10년도 더 된 일인데 말레이시아 연수가 결정되니 같은 부서에 근무하던 주임님께서 말레이시아와 관련된 기억을 얘기해 주셨다. 1990년대에 말레이시아 어떤 은행에서 우리 회사를 업무차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방문단 중 여성의 비율이 높아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 회사에는 여성 간부직원이 아예 없었을 때이다.

쿠알라룸푸르에 가서 과정을 시작하고 이슬람금융을 함께 공부하던 말레이시아 출신 학생들의 구성을 보니 과연 여학생들의 비중이 두드러졌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한 학생들부터 사업가, 은행원, 중앙은행이나 규제기관에서 중간간부로 있으면서 학업을 병행하는 이들까지 면면도 다양했다. 출석부를 보고 세어보진 않았지만 얼핏 기억을 떠올려 봐도 숫자도 반 이상 될 뿐 아니라 경력도 화려했다. 이슬람금융과 관련한 중요한 규제를 담당하는 두 기관인 중앙은행과 증권거래소 수장이 당시 모두 여성이라는 점도 인상 깊었다. 특히 중앙은행 총재였던 제티 아지즈는 2000년부터 2016년까지 16년간이나 총재직에 있으면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2006년에는 주한 말레이시아 대사관이 주최하는 투자설명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말레이시아 투자진흥청(MIDA)장이 발표를 하였다. 청장은 여성이었는데 같은 테이블에 있던 말레이시아 여성분이 앞에 있는 청장이 네 아이의 어머니라고 말해 주었다. 아이를 넷을 낳아 양육하면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이루어 낼 수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인도네시아 톡톡]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우먼파워
그럼 인도네시아는 어떤가?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세계 성 격차(gender gap) 지수 2020’ 자료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조사대상 153개국 중 85위에 올랐다. 우먼 파워로 깊은 인상을 주었던 말레이시아는 104위, 우리나라는 108위이다. 참고로 같은 자료에서 인도네시아의 고등교육 진학률은 여성이 39%, 남성이 34% 이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여성들이 더 많이 대학에 간다.

재미있는 수치들도 있다. 예를 들어 여성의 노동참여율은 54%로 남성의 84%에 크게 못미친다. 하지만 일단 직장에 들어가면 간부급 직원이 될 가능성은 다른 나라에 비해 낮지 않다. 동 조사(WEF)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직장 내에서 간부급 직원의 여성 비율은 55%로 세계 1위이다. 정말 그럴지 수치의 신뢰성에 고개를 갸웃하게 되긴 한다. 하지만 ‘니케이 아시안 리뷰(Nikkei Asian Review)’에 실린 다른 자료에서도 인도네시아의 직장내 간부급 여성 비율은 37%로 중국의 31%, 한국의 17%, 일본의 12%를 훨씬 상회한다. 또, 여성의 초등교육 참여율은 91%로 남성의 96%에 못 미치지만, 대학이나 직업교육 등을 포함하는 고등교육 참여율은 39%로 남성의 34%를 상회하고 이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즉, 교육이나 직업선택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소외되는 여성들이 많지만 일단 기회를 얻고 나면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닐지라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취를 이룰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에도 앞에서 언급했던 말레이시아 중앙은행 총재의 사례처럼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하고 있는 여성들도 있다. 조코위 1기 내각에 이어서 2기 내각에서도 재무장관으로 연임된 스리 물야니는 유도요노 정권 때인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약 4년 반동안 장관직을 수행하고 세계은행 이사를 지내고 2016년 조코위 1기 내각에 다시 기용되었다가 작년말 연임되었다. 정권과 시장의 신뢰가 그만큼 두텁다는 방증일 것이다. 조코위 1기 내각에서 5년간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수시 장관은 철의 리더쉽으로 유명하다. 입지전적인 기업가 출신으로 도서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비중이 큰 해수부를 맡은 수시 장관은 불법어로 외국어선 나포 및 폭파, 저인망 어업 금지 등 강력한 추진력이 필요한 정책들을 수행하였다. 이 와중에 대통령과도 의견이 다르면 각을 세우는 소신을 보이기도 하였다. 인도네시아 내각에서 여성장관 비율은 약 네명 중 한명 정도로 비율이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주요 부처에 기용되어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하는 장관들이 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덧붙여 이미 여성대통령을 배출하였고 (메가와티 대통령, 2001년 7월~2004년 10월) 그의 딸이(뿌안 마하라니) 첫 여성 국회의장(2019년 10월~    )이 되었다는 점도 언급할 만 하다. 다만, 정치가 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구조인 인도네시아에서 부모의 후광을 입고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는 점에서 여성 영향력의 확대로 해석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수는 있다.
[인도네시아 톡톡]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우먼파워
물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우먼파워에 대해 쓴 위 내용이 두 나라에서 여성들이 모든 분야에서 만족할 만큼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아직 갈 길이 멀기는 하다. 많은 여성들이 고등교육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여전히 열명 중의 한 명 정도의 여자 아이들은 초등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항목들은 앞으로도 개선되어 갈 것이다. 그게 역사의 흐름이다. 그런데 역사가 꼭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지는 않는다.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제정 추진 중인 ‘가족강화법안’ 초안은 가정에서 남편의 역할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안녕과 복지를 담당하며 가족을 지키는 것이라고 규정하는 반면 부인의 역할을 가사 및 남편과 자녀를 돌보는 것으로 한정하고 있다. 종교적 규범에 근거한 이 법안에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얼마 전에는 한 일하는 여성이 SNS에 올린 영상에 마음이 무거웠다. 이 영상에서는 한 종교지도자가 여성은 밖에 나가서 일하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유는 여성이 밖에 나가서 일을 하면 여러 유혹에 노출되기 쉽고, 여성이 밖에서 성취를 맛보면 남편이 기가 죽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로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 글을 올린 여성이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씩씩하게 일을 하고 공부하고 아이를 키우며 지금에까지 이른 것을 알기에 마음이 심란해졌다.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라 할지라도 여성들에게 점점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데 여성 스스로가 그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우먼파워의 방향이 어떻게 잡혀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 위 내용은 필자 소속기관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습니다.

양동철 한경닷컴 칼럼니스트 / 한국수출입은행(crosus@koreaexim.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