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사에서 20년 이상을 근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연봉을 많이 주는 회사로 스카우트 되어 이직을 할 수도 있고, 요즈음 같은 경제 불황기에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회사를 떠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조금이라도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20년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대단한 것을 넘어 존경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이름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스포츠 군웅이 할거하는 유럽 축구계에서 20년 이상을 한 구단에서만 활동한다는 것은 가히 신화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1986년 ‘맨유’라는 약칭으로 우리에게 더 친근한 영국의 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영입된 이래 지금까지 팀을 이끌고 있는 감독 알렉스 퍼거슨. 그는 금세기 최고의 감독이자 팀의 혁신을 이룩한 훌륭한 리더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리더십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오죽했으면 영국왕실은 1999년 그에게 기사작위를 수여했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이미 그를 가리켜 퍼거슨 경이라고 부른다.




퍼거슨 감독의 부임이후에 달라진 것은 비단 중위권에 머물러 있던 맨유가 수많은 리그 우승이나 유럽 챔피언스 리그를 제패한 것만이 아니라, 매년 수천억 원의 흑자를 내는 글로벌 구단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맨유는 이제 영국의 한 지방 도시의 팀이 아닌 전 세계 축구팬을 열광시키는 마력을 가진 ‘브랜드 구단’이 되었다. 한 나라의 자그마한 스포츠클럽에서 수천억 원의 이익까지 창출하는 부자구단이 되기까지 퍼거슨 감독의 역할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은 한국 사람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그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사람도 많고, 나아가 그를 선수기용을 멋대로 하는 다분히 감정적인 사람으로 매도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퍼거슨 감독을 비열한 인종차별주의자로 묘사하는 글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세계 최고의 감독을 이렇게 비난까지 하는 이유는 박지성 선수 때문이 아닐 수 없다. 박지성, 그는 누구인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 대한민국 팀을 4강까지 올린 산소탱크이며 모든 축구선수의 꿈을 이룩한 프리미어 리거이다. 그것도 전 세계 최고인 맨유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어깨를 당당히 한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영웅이고 우상이다. 그런 박지성을 퍼거슨 감독은 두 번이나 유럽 챔피언스 리스 결승전 선발에서 제외시켰다. 우리로서는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고, 비난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얼마 전 퍼거슨 감독은 인터뷰에서 어렵게 말했다. “박지성을 결승전에서 제외한 이유는 골 결정력 부족 탓이다” 우리의 우상인 박지성을 그는 감독의 입장에서 냉철하게 골 결정력이 부족한 선수라고 묘사했다. 그의 출전을 갈망하는 한국 팬들에게는 섭섭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으나, 인기에 영합하지 않는 진솔하고 솔직한 대답이 어쩌면 박지성 선수의 분발의 기대하고 격려하는 소리로 이해가 되어 그리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뒤집어 생각하면, 맨유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골잡이로서의 맡은 바 임무를 다하지 못하면 어림도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을 거 같았다. 동시에 그의 냉철한 성격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조직의 리더를 막론하고 리더는 결정을 해야 한다. 리더의 임무는 매순간마다 결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것, 공정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야말로 리더의 책임이며 의무이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물리치고,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리더의 책무이기 때문에 리더는 고독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리더가 내리는 냉철한 결정도 주변의 입김이 배제된 ‘고독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퍼거슨 감독은 작년 유럽 챔피언스 리그 우승 직후 박지성의 결장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 박지성을 선발 선수 명단에서 뺀 건 가장 힘든 결정이었다.”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있는 리더들도 이제부터는 논공행상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힘든 결정, 고독한 결정을 해야 할 때다.




<이 칼럼은 3월 16일자 서울신문에 실린 본인의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