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길원 포스텍 화학공학과 교수(오른쪽 두 번째)가 16일 경북 포항 포스텍 연구실에서 소속 연구원들과 함께 유기반도체를 실험하고 있다. 연구단 제공
조길원 포스텍 화학공학과 교수(오른쪽 두 번째)가 16일 경북 포항 포스텍 연구실에서 소속 연구원들과 함께 유기반도체를 실험하고 있다. 연구단 제공
손바닥에서 빛이 나면서 전화벨이 울린다. 버튼을 누르고 귀에 갖다 대니 상대방의 목소리가 나온다. 21세기 말을 배경으로 한 영화 ‘토탈 리콜’(2012년 개봉)의 한 장면이다. 피부 속에 초소형 스마트폰 칩셋을 심었다. 말 그대로 ‘핸드폰’이다. 실제 피부처럼 탄력적이면서도 전기적 성질이 있는 ‘전자 피부’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조길원 포스텍 화학공학과 교수가 이끄는 ‘나노 기반 소프트 일렉트로닉스 연구단’은 영화 속 장면을 현실로 만들어줄 전자 피부에 도전하고 있다. 전자 피부는 유기반도체 및 유연 전극을 포함한 신소재로 만든다. 유기반도체는 휘거나 늘어나지 않는 딱딱한 기존 실리콘 재질의 무기반도체와 달리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노영용 동국대 융합에너지신소재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최근 세계 최고 수준의 유기반도체 소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유기반도체의 단점으로 꼽힌 낮은 전하 이동성을 기존보다 3배 이상 보강했다. 화학 구조가 평평해 유연성이 높은 반도체 신소재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분극 현상이 잘 일어나는 고분자 절연체로 전하 이동 속도를 향상시켰다.

홍용택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탄소나노튜브로 전극을 형성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탄소나노튜브는 탄소가 벌집처럼 연결돼 다발 형태를 이룬 것으로 지름이 나노미터(10억분의 1m) 단위다. 그런데도 구리보다 전기를 1000배나 잘 통하고 강철보다 100배나 강해 여러 분야에서 활용 가치가 높다.

한중탁 한국전기연구원(KERI) 박사팀은 전기가 잘 통하는 유연한 섬유를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탄소나노튜브와 은나노 끈을 재배열하는 방식을 썼다. 의류형 웨어러블(착용형) 기기 시대를 앞당기는 데 기여할 전망이다.

소프트 일렉트로닉스 기술 분야는 아직 미국 등 선진국보다 2~3년 정도 뒤져 있다. 미국 일리노이대나 스탠퍼드대 등은 이미 뇌나 심장 속에 유연 전극 소자를 꽂아 생체 신호를 읽어내는 수준까지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011년 나노 기반 소프트 일렉트로닉스 연구단을 글로벌 프런티어 사업으로 선정해 2020년까지 매년 100억원씩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단장을 맡고 있는 조 교수는 “최근 연구단에서 플렉시블 전자소자 등과 관련된 세계적인 성과물이 속속 나오고 있다”며 “(글로벌 프런티어 사업 기간이 끝나는) 2020년이면 충분히 선진국 수준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