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행정부가 해결해야할 시급한 과제가 한둘이 아니지만 산업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를 통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인 경제난부터 해결해야할
처지이다. 이를 위해 금융산업의 구조개편과 합리화방안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며 나라 안팎에서 날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 예로
IMF(국제통화기금)는 92년판 년례보고서에서 우리의 금융개방속도가 느리고
내용이 부실하다고 비난했다.

올 3~4월까지 확정될 예정인 3단계 금융시장 개방계획을 비롯하여
지방단자사의 업종전환,2단계 금리자유화,은행인사의 자율화등 그동안
논의되어온 많은 현안들에 대해 조만간 새정부가 결단을 내려야 할것이다.
이에 앞서 금융산업의 경쟁력강화와 관련하여 몇가지 사항을 짚고
넘어가야할 것같다.

첫째는 국내 금융기관의 영업기반이 매우 약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대응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점이다. 만성적인 초과자금수요속에
예대마진도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크기 때문에 뱃속편한 장사를 해온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수많은 기업들이 경기침체와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데
비해 국내 은행들의 영업이익은 28. 4%나 늘어나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이익증가도 한겹 벗기고 보면 문제가 많다. 장부가격이 싼
주식을 팔아 회계상 이익을 늘리는 변칙행위도 문제지만 정말 큰 문제는
"꺾기"등을 빼면 진정한 영업이익이 과연 얼마나 될것인지 의심스럽다는
사실이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고객들에게 대출커미션을 뜯어내고
서류심사다,담보감정이다 해서 시간을 끌며 심지어 고객에게 제공하는
어음과 수표의 숫자까지 차별하는 반관료적인영업방식으로는 외국
금융기관과의 경쟁은 꿈도 꿀수 없다. 따라서 이익규모가 얼마고
영업기반이 어떻고를 떠나서 거래기업의 이익과 고객의 편의를 제일로 하는
경영자세가 가장 필요하다.

둘째 요즘 유행하는 "인사는 만사"라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제조업이건 금융기관이건 모든 경영은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인사자율화는
금리자유화와 함께 금융자율화의 핵심이라고 할수 있다. 따라서
은행임원의 선출방식이 어떻게 바뀔지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시중은행의 주식을 별로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은행장을
포함한 임원의 선출에 음양으로 영향력을 휘둘러왔다. 이같은 관치금융의
고리를 끊기 위해 내부승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끊임없이 있어 왔는데
임원선출이 내부승진이냐,외부영입이냐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문제의 핵심은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고 직원들이 능력을 발휘할수
있게 근무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며 금융기관장의 의사결정권을 넓혀주되
그 결과에 책임을 지게하는 것이다. 자체승진한 임원이 내부사정에 밝은
것은 분명하지만 자칫 금융기관의 공공성을 무시하고 변칙거래를 일삼는등
집단이기주의에 빠질 염려도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대장성출신과
은행출신이 번갈아 은행장을 맡는 관행이 큰무리 없이 지켜지고 있다.

무엇보다 핵심적인 문제는 정치권력층에서 금융자율화를 이루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고도성장을 위한 금융지원과정에서
규제금리와 실세금리의 격차가 확대되고 굳어지면서 정치자금의 제공과
연계된 특혜대출이 대형금융사고와 부실채권으로 이어져 은행경영을 어렵게
하고 금융질서를 어지럽혔다.

이같은 구조적 비리의 사슬에서 권력층의 자의적인 금융인사는
필요불가결한것이었다. 정부교체를 앞두고 최근 정치자금축소와
정당개혁이 논의되고 있는 사실은 금융자율화를 위해서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적재적소의 인사와 고객우선의 영업자세를 갖춘 뒤에는 마지막으로 과감한
경영합리화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술수준과
경제환경에 적응하고 살아 남기 위해서는 다양한 금융상품의
개발,전문인력의 양성,금융업무의 전산화및 기계화등이 체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처럼 초과자금수요가 있고 생산성이 낮은 경우 이익확대보다
비용절감을 통한 합리화가 의미있다고 본다. 금융업은 대표적인 서비스
산업인데 전자기술혁명이 급격히 진행되는 오늘날에는 사무직 노동자의
생산성향상이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긴요한 과제이다.

은행의 경우 가장 시급하고도 효과적인 비용절감의 방법은 불필요한
인원을 줄이는 일이다. 서비스업에서 가장 큰 비용부담은 바로 인건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뽑혀 일하고 있는 직원을 감원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외형팽창위주의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고 직원채용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경제의 핏줄"인 금융산업의 경쟁력강화를 위해서는 형식이 문제가 아니고
개혁의 내용과 이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