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특별기획 - '죽어가는 기업가 정신…불꺼진 성장엔진'
“자동차로 치면 감속에 감속을 거듭하다가 설 정도죠.”(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둔화하는 경제 성장에 대한 우려를 빗댄 말이다. 조 교수는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상황에서는 창의적이고 위험을 무릅쓰는 도전의식인 기업가정신에서 성장동력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견·중소기업인이 더 위축

기업가정신 위축에 대해 대기업보다 중견·중소기업인의 우려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가정신주간(10월28~31일)을 맞아 한국경제신문과 대한상공회의소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기업가정신이 위축됐다’고 답변한 중견기업인은 84.3%로 대기업(80%)과 중소기업 경영자(81.6%)보다 많았다. 중소기업에 주어지는 각종 혜택을 못 받는 데다 대기업으로 크기도 쉽지 않은 어중간한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대기업은 공정거래법에 따라 상호출자제한을 받는 연매출 5조원 이상의 기업 집단, 중소기업은 중소기업기본법에 따라 국가의 보호를 받는 기업을 대상으로 했다.

최근 기업 경영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현안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대기업(38%)과 중소기업(33%)이 각각 통상임금을 꼽았다. 이에 비해 중견기업은 지배구조개편 관련 상법개정안(33.3%)을 지적했다. 기업가정신을 높이기 위해 기업인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대기업 경영자들은 도전정신·위험감수 의지(36%)와 혁신·창의력(26%)을 많이 꼽았다. 중견기업은 혁신·창의력(33.3%)과 글로벌 마인드(31.4%), 중소기업은 혁신·창의력(37.9%)과 윤리·준법의식(16.5%)을 주로 선택했다.

○규제개혁, 반기업 정서 해소 시급

전화설문에 응한 기업인들은 정부에 획기적 규제 완화로 기업가정신을 되살리고, 학교 교육을 통해 반기업 정서를 없애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울의 한 기업 대표는 “현실에 맞도록 법과 제도를 고쳐야 많은 기업들이 기업가정신을 살려 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충남권의 한 중소기업인은 “규제 철폐, 법인세 인하, 저렴한 공단 부지 공급, 외국인 근로자 확대 공급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북지역의 한 기업인은 “기업가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를 갖도록 학교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인 스스로의 노력과 분발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호남지역의 한 기업인은 “경영자는 도덕과 윤리의식이 투철해야 한다”며 “그 바탕 위에 창의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업가정신 없인 성장도 없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기업가정신과 경제 성장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호 한경연 연구위원은 “세계기업가정신발전기구가 발표하는 기업가정신지수(GEDI)와 각종 통계수치를 비교 분석한 결과 기업가정신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0.88이라는 높은 상관계수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기업가정신이 활발할수록 1인당 GDP가 높아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올해 한국의 GEDI는 118개국 가운데 43위에 머물렀다. 중국 말레이시아 멕시코 등과 함께 4그룹에 속해 있다.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칠레 등이 한국보다 높은 3그룹이다.

이렇게 식어버린 기업가들의 열정이 한국 경제의 성장 저하로 나타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 경제는 지난 10년간 두 차례(2009, 2010년)를 빼곤 세계 평균에도 못 미치는 경제성장률을 나타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연평균 신설 기업체 수(종업원 50명 자본금 3억원 이상)를 보면 1990년대 396개, 2000년대 370개, 2010년대 71개로 최근 들어 기업 설립이 저조하다. 2006년 신규사업 진출을 검토한 기업은 전체 1만786개 중 992개로 9.2%였지만 2011년에는 1만1722개 중 467개로 4%로 떨어졌다.

■ 글 싣는 순서

(上) 꺼져가는 성장동력…기업이 돌파구
(中) 말라버린 도전정신…실패를 격려하라
(下) 뭘 먹고 사나…미래 유망산업을 키워라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