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1 국회의원 총선거 유세를 통해 중소상인의 두려움을 알게 된 새누리당에서는 인구 30만명 미만의 중소도시에는 대형마트 및 기업형슈퍼마켓(SSM)의 진입을 5년간 금지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처리할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말 개정된 유통법이 대형마트와 SSM의 전통시장 1㎞ 이내 입점을 금지하고 월 2회 의무 휴무하도록 한 데 이은 추가적인 규제방안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지향점이 다르다. 자본주의는 경쟁을 통한 독점적 지위를 강하게 지향하는 성장주의적 성향이 강한 경제적 이념인 반면 민주주의는 서로를 인정하는 상생적인 차원에서 평등주의적 성향이 강한 정치사회적 이념이다. 민주화가 정치사회적 측면에서는 이루고 지켜야 할 분명한 지향점으로 보이는 반면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달성하고 지켜야 할 지향점 자체에 대한 논의가 구성원들 간에 합의가 이뤄지기 어려운 쟁점부분이다. 현행 헌법에서는 경제주체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되(제119조 1항), 경제주체 간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이 가능하다(2항)고 명시하고 있다.

2009년 대형마트가 포화상태를 보인 이후 SSM이 급속히 성장·발전하면서 유통 대기업 측이 내세우는 ‘1항’과 골목상권 측의 ‘2항’을 둘러싼 갈등이 사회문제화된 것이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유통산업의 발전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도 소비자를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 간 조화점을 지향한 진정한 유통발전 정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은 구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지원이 이뤄진 전통시장은 최소한의 상인회가 구성돼 있는 조직이다. 반면 골목상권은 전혀 다른 영세한 개별상인들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2007년 전체종사자 중 10인 이하 소상공인 종사자의 비중이 49.4%로 유럽연합(EU)의 28.9%보다 월등히 높다. 서울시의 ‘2011년도 사업체조사’에 따르면 2010년 19개 산업에서 최대 고용분야는 도소매업으로, 전체종사자 449만명의 17.4%인 78만2000명이 유통분야 종사자들이다. 이 조사에서 보면 사업체 수 감소 1위가 소매업이고, 2위는 분식점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소규모의 영세 골목 자영업자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큰 이슈 중 하나인 대형매장과 전통시장의 시장다툼이 법률적·지역사회적 규제에 이은 정치적 쟁점이 된 이유는 바로 고용기회의 박탈에 따른 것이다. 영세업종(소규모 슈퍼, 떡볶이·순대 가게 등)과 SSM 간 경쟁은 이런 4인 이하 소상인들의 고용 박탈에 따른 것이다. 동네빵집의 베이커리화, 통닭집의 치킨점화, 미용실의 헤어숍화, 다방의 커피전문점화, 정육점 이발소 동네서점 등의 몰락에 이어 요즘에는 지역상권별로 있었던 결혼식장이 럭셔리 원스톱 웨딩센터의 등장에 밀려나고 있는 중이다.

이런 사회의 변화 발전 중 요즘 문제되고 있는 소상인들은 유통법에서 정의한 전통시장 안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들 소상인은 대개 자본도 기술도 없이 이면도로에 있는 영세 자영업자들이라는 점이다. 이들 영세상인의 제도권 편입비율을 높이기 위한 유통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형마트와 SSM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과 강제휴무일 지정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소지를 안고 있다. 우선 소비자의 선택권을 인위적으로 제한해 쇼핑에 불편을 준다는 점이다. 맞벌이부부나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등 주말이나 심야에 쇼핑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들은 큰 불편을 겪게 된다. 이는 소비자들이 재래시장과 동네슈퍼를 이용하기보다는 당장의 구매를 포기하거나 쇼핑 횟수를 줄이는 소비 행태가 나타날 가능성도 높다.

강제 휴무는 대형마트와 SSM뿐 아니라 이들과 거래하는 협력업체들에도 휴무에 따른 매출 손실을 가져온다. 특히 당일 매입과 판매·폐기를 원칙으로 하는 농수축산물 등 신선식품 협력업체들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농수축산물 판매량 감소와 선도 및 재고관리 등의 문제로 농가 거래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휴무일에는 농산물 매입 자체를 진행할 수 없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에 따르면 대형마트·SSM의 월 2회 휴무로 연간 5500억원 규모의 매출 손실이 농어민들에게 돌아갈 전망이다. 대형마트와 SSM에 입점해 장사를 하는 식당 옷가게 안경점 등 중소 자영업자들도 규제로 인해 매출 감소 등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이들에게는 고객 수가 평일보다 50~60% 많은 휴일이 ‘대목’이고, 점포 특성상 매출 분산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월 2회 휴무에 따른 매출 손실을 고스란히 입을 수밖에 없다.

영업시간 축소와 강제 휴무에 따른 잉여 근로자 발생으로 인해 고용 감소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대형마트와 SSM 고용인력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판촉 사원과 단기 아르바이트, 주말 파트타이머, 주부사원, 고령층 고용인력 등 생계형 근로자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체인스토어협회는 대형마트와 SSM의 월 2회 휴무로 5636명, 심야영업 제한으로 866명의 잉여 근로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인력 감소뿐 아니라 휴무에 맞춰 기존 인력을 재배치하고 점포운영 인력을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대형마트와 SSM이 창출해온 신규 고용이 위축될 가능성도 크다.

외부적으로도 점점 늘어나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확대에 따른 국내시장에서의 생존과 고객 확보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질적 변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1996년의 유통시장 개방에 따른 국내시장 보호를 대형마트가 이뤄냈다면, 향후 예상되는 외국업체 국내 유통시장 진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좀 더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프랜차이즈 체인사업 형태의 구상이 절실한 시기다.

이를 위해서는 동일한 포맷의 SSM 확대보다는 지역단위별 업태개발 능력 양성이 시급하다. 현재와 같은 진화과정에서는 소상인들이 급속히 실직화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들을 조직 시스템으로 재형성시키는 상생업태 개발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유통 대기업들은 내부의 질적 리노베이션을 통해 향후의 성장잠재력을 배양시키고, 소상인들은 신업태 이노베이션 노력으로 협동조합 같은 ‘로커베스팅’(지역+투자의 합성어)을 통한 경쟁력 제고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들 경제주체의 경쟁을 규제하기보다 상호 간 협의를 유도해 시장에서 스스로 진화하도록 해야 한다.


이승창 한국항공대 교수

△연세대 경영학 박사△인천국제공항공사 자문교수 △미국 텍사스주립대 객원교수 △한국유통학회 회장(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