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 근로자 33만명…재계 "모두 정규직으로 바꾸란 말이냐"
대법원이 23일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업체 근로자 최모씨(36)의 부당해고 청구소송 판결에서 “2년 이상 불법 파견으로 일한 근로자는 원청업체가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다”며 최씨의 손을 들어주자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대법원 판결로 유사 소송이 노동계 전반으로 퍼질 수 있는 데다 노동계에서 “모든 하도급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은 소송 당사자 1인에 대한 판단일 뿐인 만큼 노동계는 이를 확대 해석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내하도급은 정규직 지위”

대법원이 최씨 손을 들어준 것은 작업 지시 및 감독을 하청업체가 아니라 원청업체(현대차)로부터 받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행 법률상 원청업체에서 작업 지시를 받으면 파견근로자로 간주된다. 제조업은 파견근로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대차는 2년 이상 최씨를 불법 파견으로 활용한 만큼 정규직으로 고용할 의무가 있다는 게 대법원 판결의 요지다.
하도급 근로자 33만명…재계 "모두 정규직으로 바꾸란 말이냐"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며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8300여명에 달하는 하청근로자에 대한 작업 지시 및 감독을 하도급업체 사업주를 통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 노조와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총 관계자는 “사내하도급 근로자는 해당 사내하청업체의 정식 채용 절차를 통해 입사한 정식 직원으로 4대보험 혜택을 받는 정규직”이라며 “사내하도급 자체를 불법 파견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형 사업장에서 사내하도급을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은 선진국과 달리 제조업의 파견근로를 금지하고 있는 데다 까다로운 정리해고 요건 등 낮은 고용 유연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300인 이상 대형 사업장 1939개 가운데 41.2%에서 사내하도급을 활용하고 있다. 사내하도급 근로자는 32만6000명에 달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원청업체가 직접 고용할 경우 연간 5조40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됐다.

◆정부 “불법파견 근로감독 강화”

정부는 원청업체가 사내하청 근로자에 대해 인사노무권을 행사하거나 업무 수행에서 지휘명령을 행하고 있다면 불법 파견이라고 보고 철저히 감독한다는 방침이다. 2006년 말 개정돼 2007년 7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에 따르면 2년 이상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경우 고용부는 원청업체에 직접고용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어기면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린다.

올 8월부터 적용하는 파견법 개정안은 불법 파견이 확인되면 2년을 기다리지 않고 발견 즉시 사용사업체에 고용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채필 고용부 장관은 개정안이 공포된 지난 1일 “개정 법률이 현장에 정착될 수 있도록 빈틈없이 준비해 산업현장에서 비정규직 대책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장진모/정태웅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