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지난 3일 개막한 연극 ‘만선’에서 어부 곰치 역을 맡은 김명수(오른쪽)와 아내 구포댁을 맡은 정경순.  신경훈 기자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지난 3일 개막한 연극 ‘만선’에서 어부 곰치 역을 맡은 김명수(오른쪽)와 아내 구포댁을 맡은 정경순. 신경훈 기자
넓고 검푸른 바다. 망망대해를 향해 나아가는 어부들에겐 꿈이 있다. 물고기가 가득 찬 배를 몰고 돌아오는 만선의 꿈이다. 하지만 이 꿈은 곧 좌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거친 바다는 만선의 꿈과 함께 때로 소중한 사람들까지 휩쓸어버린다. 지난 3일 개막한 국립극단의 연극 ‘만선’은 주인공 곰치의 만선에 대한 꿈과 집념, 좌절을 동시에 보여준다. 한국 리얼리즘 연극의 정수로 평가받는 1960년대 대표 명작이다.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연습실에서 ‘만선’의 주역 김명수·정경순을 만났다. 김명수는 가족들을 잇달아 바다에서 잃었지만 만선을 위해 또다시 바다로 나아가는 어부 곰치 역을 맡았다. 정경순은 곰치를 말리다 결국 미쳐버리는 아내 구포댁을 연기한다. 이들은 “1960년대에도, 2021년에도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건 시대를 뛰어넘는 의미와 진리를 보여주는 명작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삶의 터전 향해 나아가는 집념

1964년 초연된 이 작품은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돼 많은 사랑을 받았다. 문학 교과서에도 실려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정경순은 “가난의 고통과 인생의 질곡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이야기인 만큼 요즘 사람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20년 후에도 올라갈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곰치는 어부를 숙명으로 삼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곰치는 안 죽는다. 내가 죽나 봐라”라는 대사는 바다를 향한 곰치의 집념을 잘 보여준다. 김명수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바다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굳은 신념을 가진 인물”이라며 “여기에 중점을 두고 연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곰치는 고기를 잡아도 빈곤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높은 배 임차료와 고리대금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또 바다로 향하고, 가족들은 파멸에 이른다. 구포댁은 그런 남편을 향해 “뭍으로 가야 살제”라고 설득하다 끝내 미쳐버린다. 정경순은 “어느 엄마가 자식들이 고기 잡다가 다 죽는데 버틸 수 있겠느냐”며 “감정적으로 에너지 소모가 많은 연기여서 힘들지만 이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풍어제, 사투리 등으로 이채로운 무대

작품은 일부 윤색됐다. 극의 절정이었던 장면이 프롤로그로 재탄생했다. 어부들이 만선과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풍어제를 지내는 장면이다. 김명수는 “어부들의 삶을 단번에 보여주는 동시에 현대인들의 염원을 보여준다”며 “불합리한 사회구조 속에서도 목표를 향해 살아가고, 좌절하게 되더라도 다시 나아가는 우리 삶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향토적 색깔도 강하게 배어 있다. 맛깔나는 전라도 사투리가 이목을 사로잡는다. 정경순은 “오래전 작품이라 고루할 수 있다고 처음엔 생각했는데 사투리 덕분에 아주 재밌고 특색 있다”고 말했다. 김명수는 “사투리를 하는 게 항상 어렵지만 심재찬 연출님이 ‘사투리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야 안에 품고 있는 걸 표출할 수 있다’고 했다”며 “내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투리 연기를 최대한 편하게 하고 있다”고 했다.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한 두 배우는 방송, 영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도 연극 무대에 꾸준히 오르고 있다. 정경순은 “드라마 대사를 잊는 꿈은 안 꿔도 무대에서 대사가 생각나지 않는 악몽은 계속 꾸게 된다”며 웃었다. 김명수도 “곰치에게 망망대해가 두려움의 존재라면 저에겐 이 깜깜한 무대가 두렵게 느껴진다”며 “하지만 곰치처럼 또 발을 딛고 즐기고 있으며, 앞으로도 무대에 계속 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연은 오는 19일까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